조침제문 [弔針祭文]의 유부인 [兪夫人] 이야기
1830년 서울 장안의 인구는 10만 안팎이었다. 대대로 이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살림새는 오랜 가뭄과 전염병을 치르느라 말이 아니었다. 홍경래[洪景來]의 난이며, 천주교[天主敎] 박해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는, 뒤숭숭한
시기에 유씨낭자 [兪氏娘子]의 집안도 수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엄한 봉건사회에서도 양반이라는 지체 때문에 가난하게 살긴 했지만 벼슬하는
어른들이 계시던 까닭으로 보고 듣는 것이 여느집들과는 달랐다.
유씨부인은 시집온지 3년 되던해 불행히도 남편을 병마로 여의고
말았다. 소복단장[素服端裝]의 애처로운 몸이 나뿐이 아니라며 스스로 달래며 자식 하나없이 가난한 시집 살림을 바느질 벗삼아 꿋꿋이 살아나가야만
했다. 일찌기 친정에서 배운 사서삼경[四書三經] 이며 친정 아버지가 써주신 사소절[士小節]이며, 계녀서[戒女書]가 반다지 구석에서
딩굴었지만, 긴 한숨 남한테 들키지 않도록 조신[操身]하게 살았다.
침세[針勢:바느질] 솜씨가 좋다하여 대궐 안에서 상의원[尙衣院]
상침[尙針]들 소개로 장원급제한 선비들의 관대[冠帶]옷 주문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일에 쫓기는 바쁜 생활속에서도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여 이웃과
아랫 사람들에게도 늘 존경받았다. 지방[紙榜]을 쓸 줄 모르는 중인들이 글씨를 빌리러 오기도 하였으니, 유씨부인의 생활은 고적하나 설움이 깃들
틈이 없었다.
어느날 유씨 부인이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밤늦도록 바느질을 하다가 바늘을 부러뜨렸다. 조침문[弔針文] 이라고도 하고
제침문[祭針文] 이라고 하는 유명한 글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요즘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침문이 어떻게
읊어졌나 살펴보기로 한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침자(針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부녀(人間婦女)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지 우금(于今) 이 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짐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연전(年前)에 우리 시삼촌(媤三村)께옵서 동지상사(冬至上使) 낙점(落點)을 무르와, 북경(北京)을 다녀 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親庭)과 원근 일가(遠近一家)에게 보내고, 비복(婢僕)들도 쌈쌈이 나눠 주고, 그 중에 너를 택(擇)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 되었더니, 슬프다, 연분(緣分)이 비상(非常)하여, 너희를 무수(無數)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年久)히 보전(保全)하니, 비록 무심(無心)한 물건(物件)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신세(身世) 박명(薄命)하여 슬하(膝下)에 한 자녀(子女) 없고, 인명(人命)이 흉완(凶頑)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
가산(家産)이 빈궁(貧窮)하여 침선(針線)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생애(生涯)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永訣)하니,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이는 귀신(鬼神)이 시기(猜忌)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자식(子息)이 귀(貴)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僕)이 순(順)하나 명(命)을 거스릴 때 있나니,
너의 미묘(微妙)한 재질(才質)이 나의 전후(前後)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婢僕)에게 지나는지라.
천은(天銀)으로 집을 하고, 오색(五色)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婦女)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珠簾)이며, 겨울 밤에 등잔(燈盞)을 상대(相對)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無窮)하다.이생에 백년 동거(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戌時)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冠帶) 깃을 달다가, 심중간(無心中間)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精神)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頭骨)을 깨쳐 내는 듯, 이윽토록 기색 혼절(氣塞昏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 없고
하릴 없다. 편작(扁鵲)의 신술(神術)로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하였네. 동네 장인(匠人)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손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 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오호 통재(嗚呼痛哉)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ㅎ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녁 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바늘이여.
<<어구 풀이>>
유세차(維歲次) :
제문(祭文)의 첫머리에 쓰는 말 오호통재(嗚呼痛哉)라 : 아아, 슬프고 원통하도다.
행장(行狀) : 사람이 죽은 뒤 그 평생에 지낸 일을 적은 글 회포(懷抱) : 세상을 살아 오면서 마음속에 품어 온
온갖 번민이나 시름 총총(총총)히 : 매우 급하게. 바쁘게. 간략하게 대강
연전(年前)에 : 몇 해 전에 동지상사(同至上使) : 해마다 동짓달에 중국에 보내던 사신(使臣)의
우두머리 낙점(落點) : 조선 시대에 관원을 선임할 때, 임금이 세 명의 후보자 가운데 마 한
사람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서 뽑던 일 무르와 : 받아와 비복(婢僕) : 계집종과
사내종 미혹(迷惑) : 무엇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정신이 헷갈려서 갈팡질팡하는
것 박명(薄命) : 운명이 기박함 흉완(凶頑)하다 : 흉악하고
모질다 침선(針線) : 바느질 널로 하여 : 너로 인하여
생애(生涯) : 살아 온 한평생 동안. 생계(生計). 여기서는 '생계'의 뜻으로 쓰임 쟁쟁(錚錚) : 여럿
가운데에서 매우 뛰어나다 추호(秋毫) :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다는 뜻. 털끝만큼 아주 조금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능라(綾羅) : 무늬가 있는 두꺼운 비단과 얇은 비단 난봉(鸞鳳) :
난조(鸞鳥)와 봉황 수응(酬應) : 남의 요구에 응함 천은(天銀) : 품질이 썩 좋은
옷을 이름 주렴(珠簾) : 구슬을 실에 꿰어 만든 발. 구슬발 누비다 : (이불·옷
따위를) 두 겹의 천으로 겉감과 안감을 만들고 그 사이에 솜을 넣어
줄이 지게 호거나 박다 호다 : 천을 겹쳐 땀을 곱걸지 않고 일정한 간격이 있게 꿰매다
감치다 : 바느질감의 가장자리나 솔기를 실올이 풀리지 않게 용수철 모양으로 감으며 꿰매다 박다 : (바느질할 곳을)
실을 곱걸어 꿰매다 공그리다 : 실밥이 보이지 않게 솔기(옷이나 이불 등을 만들 때, 두 폭의 천을 맞대고 꿰매어
생긴
줄) 속으로 바늘을 떠서 꿰매다 술시(戌時)에 : 초경(初更). 밤 7-9시
봉미(鳳尾) : 봉의 꽁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 어떤 의도나 의식이 없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중에 산란(散亂)하다 : 흩어져 어지럽다 기색혼절(氣塞昏絶) : 기가 막히고 혼이
나감 하릴없다 : 어찌할 도리가 없다 편작(扁鵲) : 중국 춘추 시대의 이름난
의사(醫師) 신술(神術) : 신령스런 솜씨 장생불사(長生不死) : 오래 살고 죽지
않음 백인(伯仁) : 중국 진(晋)나라 때 주의(周의)의 자(字). 왕도(王導)가 그의
동생.
왕돈(王敦)의
배반으로 죽게 되었을 때에 자기도 모르게 백인의 도움으로 살아났으나 그
뒤에 백인이 죽게 되었을 때에는 왕도가 살릴 만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모르는 채 한
까닭에 백인이 죽었으므로 뒤에 왕도가 백인의 무고한 죽음을 탄식하여 한 말 유아이사(由我而死) : 나로
인하여 죽음 능란(能爛)하다 : (사람이) 어떤 일을 막히거나 거리낌이 없이 썩 뛰어나게 잘하는 상태에 있다.
능숙하다
공교(工巧) : (솜씨가) 재치 있고 교묘함 의형(儀形) : 몸을 가지는 태도. 또는, 차린 모습. 의형.
의표(儀表). 용의(容儀) 품재(稟才) : 타고난 재주 심회(心懷) : 마음속에 느껴
품고 있는 생각 삭막(索寞)하다 : (어느 곳이) 텅 비거나 폐허가 되어 쓸쓸하다.
정을
나눔이 없이 메마르다. 평생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 : 평생을 함께 살면서 갖는 온갖
정(情) 백년고락(百年苦樂) : 한평생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 함 일시생사(一時生死) :
한 날 같이 살고 한 날 같이 죽음
바늘과 일생을 같이한 조선시대의 여인이 바늘을 의인화[擬人化] 하여 지은 조침문은 바늘을
신앙화[信仰化]한 글이다. 인간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옷을 짓느라 수천년동안 수고한 바늘의 공로를, 인간은 쉽게 잊어선 안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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