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장철문
먼 지방에 와서 먹는 점심,""이천 쌀밥""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집에 들어서 우연찮게 비싸지
않고 맛깔스런 점심을
웬일인지 밥은 아래로 내려가는데 물기는 위로 묻어 올라온다 내게 이 쌀밥 한그릇 대접할 시간이
허락된다면 큰형님 쪽으로 이 고들빼기를 밀어줄 수 있다면 오늘은 아침에 은행까지 들러 와서 지갑이 두둑한데 당신도
나도 이런 밥 한번 따뜻이 산 적 없이
당신은 일찍 넓은 데로 나가셔서 형제가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몇번인가 아우와
나만 남아 당신 세 분 모처럼 오셔서 오형제가 판자를 켜서 탁구대를 만드는데 큰 형님은 내게 당숙네 장도리 심부름을
시키셨지 나는 형님들 웃음소리를 듣는 것이 좋아서 가지 않겠다고 우겼지 큰형님은 어린놈이 고집만 세다고 회초리를 드셨는데,
큰형님은 언제나 아버지 맞잽이여서 오늘까지 한번도 그것을 원망한 적 없는데 아우한테 이런 쌀밥 한그릇 얻어먹는 것이
사치여서 그냥 가셨나
언제나 멀고 어두운 것들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던 아우가 못내 아심찮던 큰형님 내게도
오늘은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일 밖에 나오면 점심은 예사로 굶던 그런 때 밥이라면 왜 그토록 고개를 외로 돌렸는지
오늘은 이 어만 데 와서 아무렇지도 않은 밥상을 앞에 두고 당신께 꼭 이런 밥 한번 사고 싶어서 칠천원짜리
비싸지 않은 이 쌀밥 한그릇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큰일인 사람끼리 밥 한그릇 함께 비우고 낯설 것도 없는 도시
한적한 골목을 함께 걸어나갈 수 있다면 그냥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의 봄날 ― 장철문
볕 아깝다
아이고야 고마운 이 볕 아깝다 하시던 말씀 이제사 조금은 알겠네 그 귀영탱이나마 조금은 엿보겠네 없는 가을고추도
내다 널고 싶어하시고 오줌 장군 이고 가 밭 가생이 호박 몇구덩이 묻으시고 고랫재 이고 가 정구지 밭에 뿌리시고
그예는 마당에 노는 닭들 몰아 가두시고 문이란 문은 다 열고 먹감나무 장롱도 오동나무 반닫이도 다
열어젖히시고 옷이란 옷은 마루에 나무널에 뽕나무 가지에 즐비하게 내다 너시고 묵은 빨래 알손으로 처덕처덕 치대 빨아
빨랫줄에 너시고 그예는 가마솥에 물 절절 끓여 코흘리개 손주놈들 쥐어박으며 끌어다가 까마귀가 아재, 아재!
하고 덤빈다고 시커먼 손등 탁탁 때려가며 비트는 등짝 퍽퍽 쳐대며 겨드랑이 민둥머리 사타구니 옆구리 쇠때 다 벗기시고
저물녘 쇠죽솥에 불 넣으시던 당신 당신의 봄볕이 여기 절 마당에 내렸네 당신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기슭에는
가을에 흘린 비닐 쪼가리들 지줏대들 태우는 연기 길게 오르고 이따금 괭잇날에 돌멩이 부딪는 소리 들리겠네 당신의 아까운
봄볕이 여기 절 마당에 내려 저 혼자 마르고 있네
장철문 [ 1966 ~ ] · 66년 전북 장수 출생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 ·94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마른 풀잎의 노래’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바람의 서쪽”
올해 서른여덟인 그는 네번째 안거를 나고 있다.첫번째 안거는 아버지를 위해,두번째 안거는 어머니 를 위해,세번째 안거는 자신을
위해 난다는 미얀마의 전통에 따라 그는 3년 동안 승려생활을 했지만,자신에게는 부족하다고 느껴 승려생활을 하고 있다. <- 2002/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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