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햄릿의 독백

소담이2 2005. 9. 20. 18:16

 

[ 햄릿의 주 무대 크론보리성 ]

 

 

 

덴마크, 엘시노오 성의 햄릿 왕자.

햄릿이 망부 [죽은 아버지] 를 만난 성의 누벽 은 생각만해도 어깨가 오싹해 진다. 낮잠자는 아버지의 귀에 독약을 부은 숙부의 저주스런 행동에 거짓으로 미친척 하며 사랑하는 연인 오필리아의 카텐에 숨어있는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은 더 없는 비극을 보여 준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덴마크의 이야기를 극화시킨 것이다.

덴마크의 암레드 왕자의 이야기로 줄거리는 햄릿과 같으나 암레드는 영국가서 영국 왕녀와 결혼한 뒤에 다시 스코트랜드에서 그곳의 왕녀와 또 결혼하고 덴마크로 돌아와 新王 과 싸우다가 죽는다. 스코트 랜드 왕녀인 그의 처는 신왕과 결혼 한다는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햄릿이라 들었다.

유명한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독백이 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To die ― to sleep
No more;and by a sleep to say we end
The heart-ache and the thousand natural shocks
That flesh is heir to:’tis a consummation
Devoutly to be wish’d. To die, to sleep;
To sleep, perchance to dream―ay, there’s the rub: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When we have shuffled off this mortal coil
Must give us pause―there’s the respect
That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For who would bear the whips and scorns of time,
Th’oppressor’s wrong, the proud man’s contumely,
The pangs of dispriz’d love, the law’s delay,
The insolence of office, and the spurns
That patient merit of th’unworthy takes,
When he himself might his quietus make
With a bare bodkin? Who would fardels bear,
To grunt and sweat under a weary life,
But that the dread of something after death,
The undiscover’d country, from whose bourn
No traveller returns, puzzles the will,
And makes us rather bear those ills we have
Than fly to others that we know not of?
Thus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
And thus the native hue of resolution
Is sicklied o’er with the pale cast of thought,
And enterprises of great pitch and moment
With this regard their currents turn awry
And lose the name of action. (Ⅲ/ⅰ)

존재할 것이냐, 존재하지 않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고도
가슴 속에 꾹 참는 것이 고매한 정신이냐?
아니면 조수처럼 밀려드는 환난을 두 손으로 막아
그를 없애버리는 것이 고매한 정신이냐?
죽는 것은 자는 것, 다만 그뿐이다.
잠 한번으로 이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천만가지 갈등을 다 끝낼 수 있다 한다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삶의 완성,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잔다! 그래 꿈도 꾸겠지!
꿈을 꾼다? 아! 참!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군!
이 윤회의 굴레를 훨훨 벗어던지고
죽음이라는 정적 속으로 잠들 때에,
그 어떤 꿈이 우리를 찾아올까 생각하면
차마 잠드는 죽음으로 발길이 내키질 않는다.
그 바보 같은 염려 때문에 우리는
삶의 고통을 일평생 끌고 나가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조소를 참을쏘냐?
짧은 단 한자루의 칼이면
그 자신의 삶을 깨끗이 청산할 수도 있을 텐데,
압박자의 억울한 횡포, 권세가의 무례, 멸시받는 사랑의 고통,
법률의 태만, 관리들의 오만,
유덕한 사람이 가치 없는 자에게서 꾹 참고 당해야만 하는 발길질,
이 모든 것을 과연 누가 참을쏘냐?
죽은 뒤에 무엇이 올지 모르는 두려움과
나그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 못 오는 미지의 나라가
사람의 마음을 망설이게 하고,
아지 못하는 저 세상으로 날아가느니
차라리 갖은 환난을 참게 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이 무거운 고통의 짐을 걸머지고
지루한 인생행로에서 신음하며 진땀을 뺄 것인가?
이래서 분별심은 우리를 모두 다 겁쟁이로 만들고 만다.
이래서 또 결심의 상기하는 혈색 위에
침울한 사색의 창백한 병색이 그늘져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를 품고 세웠던 중대한 계획도 마침내
잡념에 사로잡혀 발길이 어긋나고
실행이라는 이름조차 묘연해지고 만다.

문예 진흥원에서 연극 이야기 강좌를 들었다. 김석만 강사 께서 희곡의 대사를 목욕탕 속에서 외워 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 혼자 중얼 거리면 미친 사람 취급 받는다고 .]그러나 나는 혼자 있을때에는 햄릿의 독백을 소리내어 읊어 보고는 한다. 마치 햄릿이 된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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