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예술

[스크랩] 블랙 웨딩드레스도 있었다!

소담이2 2006. 8. 29. 04:42

 

에펠탑의 신랑 신부 (1938-39)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작
캔버스에 유채, 148 x 145㎝
국립현대미술관, 파리

 

   올해에는 결혼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도 그렇고, 또 미디어에서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연예인이나 방송인의 결혼 뉴스가 나오고요. 결혼식에 많이 참석하다 보니 처음 결혼식을 봤을 때의 신기하고 감동적인 기분은 이제 별로 없고 사실 좀 지루해요. ^^ 결혼식들이 다 쿠키 틀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하니까요. 그래도 결혼식의 꽃인 신부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인데, 긴 드레스 자락을 끄는 신부들을 볼 때마다 이런 의문이 스칩니다 - 왜 웨딩드레스는 꼭 흰색인 거지? 물론 눈처럼 하얀 옷의 신부들은 샤갈의 그림 속 여인들처럼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어요. 하지만 언제부터 모두 흰색 웨딩드레스만 입게 된 걸까요?

 

   그와 관련해서 올해 초 뉴스위크 the Newsweek 에 이런 기사가 났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색깔 있는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심지어 블랙 웨딩드레스를 입을 계획인 신부도 있다는 기사였죠. 검은색이 날씬해 보여서 좋고 또 핑크 코사쥬를 달아줄 거니까 상복 같이 보이지는 않을 거라고요. 정말 블랙 웨딩드레스를 입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해서 사진 검색을 해봤는데 과연 있긴 있더군요. 그렇게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

 

 

   그런데 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검정 웨딩드레스는 아주 드문 케이스지만 빨강 웨딩드레스는 그리 드물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이건 미국의 웨딩드레스 샵에서 팔고 있는 레드 웨딩드레스예요.

 

출처: www.gownsbysimpleelegance.com

 

   뉴스위크 기사에서 미국의 주요 결혼식 용품 업체인 데이비즈 브라이달 David’s Bridal 의 대표가 한 말에 따르면, 3년 전만 해도 순백색이나 그에 가까운 아이보리, 크림색 정도의 웨딩드레스만 팔렸지만, 지금은 판매량의 20%가 색깔 있는 웨딩드레스라는 겁니다. 음… 블랙 웨딩드레스는 아무리 봐도 낯설지만 레드 웨딩드레스는 아주 이상하지는 않네요.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 혼례복 중 하나인 활옷이 붉은색이잖아요. 또 중국의 혼례복도 그렇고요. 붉은색은 세계 보편적으로 경사에 많이 사용되는 빛깔입니다. 어떻게 보면 결혼식에 흰색 옷을 입는 유럽과 일본의 풍습이 더 특이한 것일 수도 있다구요…

 

   그런데 사실 유럽에서도 흰색 웨딩드레스는 그렇게 오래 된 전통이 아니랍니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결혼식 그림을 하나 볼까요.

 

아르놀피니의 결혼 (1434)
반 아이크 Hubert van Eyck (1370? ~ 1426) 작
나무에 유채, 81.8 x 59.7 츠
내셔널 갤러리, 런던

 

   이탈리아의 젊은 상인 죠반니 아르놀피니 Giovanni Arnolfini 가 그의 신부 죠반나 체나미 Giovanna Cenami 와 혼인 서약을 하는 장면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유럽에서는 결혼식을 반드시 교회에서 하지 않았나? 라고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이 시절에는 그냥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결혼식의 증인은 반드시 있어야 했죠. 이 그림에서 증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림 가운데 거울 부분을 확대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거울에 신랑신부의 뒷모습이 비치고 그들 앞에 두 사람이 서있는 것이 보이죠. 바로 이들이 증인입니다. 즉 증인들은 지금 그림을 보는 우리와 같은 위치에 서있는 거죠. 그리고 거울 위에 말이 씌어있는데 그 뜻은 “반 아이크가 이 자리에 있었다”라고 합니다. 즉, 거울 속 증인들 중 하나가 바로 화가인 반 아이크였던 거죠. 이런 공간 묘사의 절묘함과 조그만 거울 속 장면을 나타낸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 때문에 이 그림이 그토록 유명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 그림은 갖가지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햇빛이 비치는데도 샹들리에에 촛불이 하나 켜져 있는 것은 신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이고, 벗어놓은 신발은 이 의식의 경건함을 나타내며, 창가의 과일은 다산을 기원하는 것이고, 발치의 강아지는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충절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웨딩드레스에 대한 것이니까… ^^ 이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신부가 흰색이 아닌 초록색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죠!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가진 옷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조차도 말이에요. 요즘 같은 대량 공장생산의 시대가 아니니 실을 뽑고 천을 짜는 일부터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고 또 신분 높은 사람들의 옷은 품위 유지를 위해 값진 원단과 자수, 보석 장식이 사용되었을 테니 옷값이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식에만 입을 옷을 따로 만든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해요. 대부분의 신부들은 – 귀족이나 농민이나 – 원래 가진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웨딩드레스라는 개념도 없었고 정해진 색깔도 없었던 것이죠.

 

농부의 결혼 잔치 (1568)
브뢰겔 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작
나무에 유채, 114 x 164 cm
미술사 박물관, 빈

 

   부유한 귀족이나 상인 계층의 신부들은 원래 가진 옷에 보석과 프릴, 모피 등을 덧대서 결혼 의상을 화려하게 만들었고, 농민 신부들은 꽃이나 리본을 사용했다고 해요. 반 아이크의 그림이 부유한 상인 계층의 결혼식을 보여준다면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브뢰겔의 이 그림은 농민 계층의 결혼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식이 걸린 밑에 앉아있는 사람이 신부인데 (이것이 그 시절 그 고장의 풍습이었나 보죠?) 이 신부 역시 흰색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분주히 수프를 나르는 사람들, 악사들, 그리고 신나게 먹고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시골 결혼 잔치의 소박하고도 흥겨운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됩니다. 우리나라의 옛 혼인 잔치를 묘사한 드라마에서 국수 먹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

 

유대인 신부 (1665)
렘브란트 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1606-1669) 작
캔버스에 유채, 121,5 x 166,5 cm
국립박물관, 암스테르담

 

   가장 부유한 계층의 몇몇 신부들은 특별히 만들어진 혼례복을 입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붉은색이 선호되었다고 합니다. 일단 화려해서 눈에 잘 띄고, 악령을 쫓는 의미와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면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그 옷은 결혼식 이후에도 입었습니다. 아까워서 어떻게 한 번만 입었겠어요. 그러니 하얀 혼례복을 입는 신부는 거의 없었죠. 흰색 옷은 금새 더러워져 여러 번 입기가 힘드니까요. 아주 가끔 있던 흰색 혼례복의 신부는 그 자체가 부富의 과시였던 겁니다. 몇 번 입고 버릴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재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스티븐 베킹엄과 매리 콕스의 결혼식 (1729)
The Wedding of Stephen Beckingham and Mary Cox
호가스 William Hogarth (British, 1697–1764)
캔버스에 유채, 128.3 x 102.9 cm

 

   18세기로 넘어와도 그림 속에서 흰색 웨딩드레스를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호가스의 그림에서 신부가 흰색에 좀 가까운 은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긴 하지만요. 흰색이 신부의 순결함을 나타낸다는 속설이 퍼지고, 또 직조 공정의 발달과 함께 옷감이 전보다 흔해지면서, 결혼식 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들이 좀더 많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흰색 혼례복은 청순함보다도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한 변호사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의뢰를 받아 그린… 요즘으로 말하자면 결혼식 기념사진 같은 거죠. 이 그림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신랑신부의 머리 위로 구름이 펼쳐져 있고 큐피드인지 아기천사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과일로 가득 찬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 Cornucopia 를 들고 있다는 겁니다. 아들딸 많이 낳고 잘 살라는 뜻이겠죠. 폐백 드릴 때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를 던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동서양이 표현은 달라도 결혼식 때 주로 기원하는 것은 결국 비슷하다는 게 재미있지 않은가요?

 

결혼식 (1791-92)
고야 Francisco de Goya (1746-1828) 작
캔버스에 유채, 267 x 293 cm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18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 각국의 신부들은 여전히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었는데, 에스파냐의 농가에서는 놀랍게도 검은색 혼례복을 입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까 블랙 웨딩드레스를 입겠다는 신부에게도 사실 선례가 있는 셈입니다. 에스파냐가 낳은 대가인 고야의 이 그림을 봐도 신부가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옷을 혼례복으로 입고 있죠. 이 그림은 사실 유쾌한 결혼식 그림이 아니에요. 시무룩한 신부의 뒤로 거의 원숭이처럼 생긴 왜소한 신랑이 신이 나서 따라가고 있는데, 못났지만 부유한 신랑이 젊고 예쁜 신부를 맞아들인다는 내용의 풍자화라고 합니다. 돈에 팔려가다시피 하는 이 신부에게는 과연 우울한 빛깔의 웨딩드레스가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식 전문가들에 따르면, 흰색 웨딩드레스를 보편적으로 입게 된 것은 영국의 빅토리아 Queen Victoria 여왕이 1840년에 앨버트 공 Price Albert 과 결혼할 때 왕실의 전통인 은색 드레스 대신 순백의 드레스를 입으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위의 그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화가가 결혼식 당시의 여왕을 그린 것이고 아래 사진은 여왕의 웨딩드레스를 재현한 것을 인형에게 입혀놓은 모습입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의상답게 잘록한 허리와 한껏 폭 넓게 부풀린 스커트, 그리고 정교한 레이스로 뒤덮인 드레스네요.

 

 

   산업화시대가 되어 웬만한 재력이 있는 집안에서는 흰색 예복을 따로 장만할 만한 여건도 만들어졌고, 또 여왕의 영향력이 대단했기에, 흰색 웨딩드레스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물론 그 뒤에도 여전히 다른 색깔의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도 많았다고 하지만, 제가 본 19세기 후반의 그림 속 신부들은 모두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더군요!

 

내키지않아 하는 신부 (1866)
툴무셰 Auguste Toulmouche (1829-1890) 작
캔버스에 유채, 59.7 x 48.4 cm
개인 소장

 

   그런 그림들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은 위의 그림입니다. 신부는 이미 웨딩드레스를 차려 입었지만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 망설임과 초조함이 가득한 얼굴입니다. 친구들이 그런 신부를 열심히 다독거리고 있고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꼭 따로 노는 사람 있죠. 저 거울 앞에 있는 아가씨 말입니다. 신부의 화관인지 아니면 들러리용 화관인지 몰라도 그걸 써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네요, 다른 사람들은 다 심각한 분위기인데… ^^

 

결혼식 잔치 (1905)
루소 Henri Rousseau (1844-1910) 작
캔버스에 유채, 163.0 x 114.0cm
오랑쥬리 박물관, 파리

 

   이 그림은 독특한 정글 그림으로 유명한 루소의 20세기 초 작품입니다. 신랑신부와 친지들이 다들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사진촬영이라도 하는지 우뚝 서있는 모습이 요즘 우리나라 결혼식들에서 줄줄이 열을 지어 서서 사진 찍는 모습과도 닮아서 웃음이 살짝 나온답니다. 그리고 검정 개는 왜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르놀피니의 결혼”에 대한 기묘한 오마쥬일까요? 신부의 하얀 웨딩드레스와 다른 사람들의 너무나 심각한 검은색 의상의 (게다가 강아지 털색깔까지!) 강렬한 대조와 완전히 원근법을 무시한 사람들의 배열이 재미를 더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까지도 어느 지역에서는 검정 웨딩드레스를 입는 게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호주 바로사 박물관 Barossa Museum 에 보관된 그 시절의 웨딩드레스를 보세요!

 

출처: http://www.abc.net.au

 

   이렇게 보면 서구의 신부들이 하나같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게 된 것은 100년도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지금 유럽과 미국에서는 신부들이 다시 일률적인 흰색 예복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는군요. 아래는 록그룹 노다우트 No Doubt 의 보컬 그웬 스테파니 Gwen Stefani 의 결혼식 사진인데, 무릎 아래가 핑크색으로 물들여진 존 갈리아노 John Galliano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죠.

 

 

   그렇지만 워낙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색깔 있는 웨딩드레스가 도입되려면 훨씬 오래 걸릴 것이라고 패션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색깔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사실 하얀 웨딩드레스가 한국의 전통도 아닌데 그걸 더 보수적으로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좀 아이러니컬하기도 해요. 좀 변화를 추구해보면 어떨까요? 아예 다른 색깔의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면 이런 식으로 흰색에 다른 색 포인트를 주는 건? 이 사진을 발견하고 마음에 들었답니다. 여기에 새빨간 장미 부케를 들면 정말 예쁠 거 같습니다. ^^

 

 

 

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글쓴이 : Moon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