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의 이야기

설국

소담이2 2006. 1. 11. 00:16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 나가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진 듯했다. 신호소(信號所)에 기차가 멎었다.

건너편 좌석에서 처녀 하나가 일어나 이쪽으로 와서 시마무라(島村) 앞의 유리 창문을 열었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어 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밖으로 내밀고는 멀리 외치듯이,

"역장니임, 역장니임." 했다.

등불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남자는 코 위까지 목도리를 감았고, 양쪽 귀에는 모자의 털가죽을 드리우고 있었다.

벌써 그런 추위인가 하고 시마무라가 바깥을 내다보니, 철도 관사인 듯한 바라크들이 산기슭에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을 뿐, 하얀 눈은 거기까지 이르기 전에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

"역장님, 저예요. 안녕하세요?"

"아니, 요오코(葉子)아냐. 돌아오는 길인가? 또 날씨가 추워졌어."

"이번엔 동생이 여기서 근무하게 돼서 역장님 신세를 지게 됐군요."

"여긴 쓸쓸한 곳이라서 곧 싫증이 날 텐데, 젊은 사람이 안됐다니까."

"아직 어린애니까 역장님께서 잘 지도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걱정 말아요, 일 잘 하고 있으니까. 앞으론 바빠질거야. 작년 겨울엔 눈이 굉장했지. 곧잘 눈사태가 나서 기차가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마을에서는 밥을 해 대느라 바빴었지."

"역장님은 옷을 꽤 많이 입으신 것 같네요. 동생 편지에는 아직 조끼도 안 입은 것처럼 씌어 있던데."

"난 옷을 네 벌이나 껴 입었어. 젊은이들은 추우면 술만 마셔 댄단 말이야. 그래 가지고 저기에 쓰러져서 빈둥거리고 있기 일쑤지. 감기가 들어서 말이야."

그러면서 역장은 손에 든 등불로 관사쪽을 비추어 보였다.

"동생도 술을 마시나요?"

"아니."

"역장님도, 벌써 돌아가시려구요?"

"다쳐서 병원에 다니고 있는 중이거든."

"어머나, 그거 안됐네요."

화복(和服)에다 외투를 걸친 역장은 추위 때문에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싶은 듯 돌아서면서 말했다.

"그럼, 조심해 가요."

"역장님, 동생은 지금 나와 있지 않나요?" 하고 요오코는 눈 위를 이리저리 살피고 나서 말했다.

"역장님, 동생을 좀 잘 돌봐 주세요. 부탁이에요."

슬플이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높은 울림 그대로 밤의 눈 속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올 것만 같았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몸을 창 안으로 들여 놓지 않았다. 그리고 선로 아래쪽을 걷고 있는 역장에게 다시 가까워지자 소리쳤다.

"역장님, 이번 휴일에는 집에 다니러 오라고 동생한테 좀 전해 주세요."

"알았어." 하고 역장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요오코는 창문을 닫고, 붉어진 빰에 두 손을 갖다 댔다. [중략]

줄거리

도쿄[東京] 출생인 시마무라[島村]가 설국의 기생 고마코[駒子]에게 끌려서 설국의 온천장을 3번이나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가끔 서양 무용에 관한 글을 번역하는 고독한 주인공 시미무라(島村)는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의 온천에 가서 순결한 생명력을 가진 게이샤(妓女) 고마코와 친해지면서 그녀의 청순한 정열에 감동한다. 그는 고마코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눈고장의 온천을 다시 찾는다. 기차 안에서 맞은 편에 앉은 고마코 춤선생의 아들과 그의 애인인 요오코를 만난다. 춤 선생의 아들은 병이 들어 있고 요오코는 병시중을 드는데 시마무라는 요오코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고마코가 귀애하는 미소녀 요코[葉子]도 끼어들어서 미묘한 삼각관계의 심리가 추구된다.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澤]를 무대로 한 설국의 풍물을 배경으로 함축성 있는 관능묘사가 잘 살아 있으며 시마무라를 통한 비정(非情)의 눈이 빛나고 있다. 유키오는 죽음의 순간 고마코를 부르며 숨을 거둔다. 도쿄에서 1년을 보낸 후 시마무라는 다시 눈고장을 찾는데 유키오의 무덤에서 요오코를 만난다.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과 분위기는 싸늘하고도 청결하다. 그것은 서두에서 그려지고 있는 눈덮인 산야의 배경과 그 배경에서 얻어진 첫인상이 지속적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결말 부분에서 황홀하게 타오르는 불기둥과 스러지는 여인의 사랑은 쓸쓸하고도 허망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책을 쓴 가와바다 야쓰나리의 죽음이 많은 의문과 아쉬움을 주었고 궁금증을 주었다. 왜? 극단적인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했는지 [?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처음 설국을 읽었을때 눈덮인 산야의 배경이 모든것을 감싸 안은듯한 온천장의 포근한 느낌만으로 남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 1899∼1972)

일본 소설가. 오사카 출생. 24년 도쿄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요코미쓰 리이치 등과 함께 《문예시대》를 창간, 신감각파로 주목을 받았다. 《이즈의 무희》 등 사실미가 풍부한 작품도 발표했지만, 주로 현실을 주관적으로 재창조하여 새로이 결정시킨 시적인 문체의 작품을 많이 썼다. 노벨상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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