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햄버거에 대한 명상

소담이2 2005. 12. 26. 09:49

 

 

햄버거에 대한 명상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장정일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 1/2큰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 1/2
달걀 2
빵가루 2컵
소금 2작은술
후추가루 1/4작은술
상치 4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1/4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곱게 다진다.
이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추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이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간을 지져
곁면만 살짝 인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렌지가 필요하다―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지에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리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치는 깨끗이 씻어 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리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치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 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 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1987년 발행]

장정일 (1962 ~ )

성서중학교 졸. 1987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최연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뒤 1990년 <아담이 눈뜰 때>를 내면서 소설가로 전업함.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 모든 장르의 글이 영화화되고 연극 무대에 올려지면서 우리 문화계에 '장정일 신드롬'을 일으킨 혁신적 작가이자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물로 분류되어 사법적 판단의 도마에 오름으로써 다시 한번 세간에 파란을 일으킨 문제적 작가이다. 그의 문학은 자기 파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위악성'을 폭로하고 있으며 실험적인 형식과 독특한 문체로 문단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희곡집 <긴여행>이 있고 <아담이 눈뜰때>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보트하우스> < 중국에서 온 편지>등의 소설이 있다.

1994년 11월 17일 **문고 못난 딸이 엄마께 드립니다. 라는 책 첫 페이지의 글을 보니 아마도 그시집이 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애가 사온 것 같다, -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아빠 까지의 시들은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마음의 명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바람.하늘.빛과 생명의 노래  (0) 2005.12.28
청산 별곡  (0) 2005.12.28
사춘기  (0) 2005.12.13
자연으로 호흡하는 詩  (0) 2005.12.02
베아트리체를 위한 詩  (0) 200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