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사춘기

소담이2 2005. 12. 13. 04:04

 

 

사춘기 1
김행숙

노랑머리 소년을 아십니까?
방과 후에 미용실에서 아줌마들의 머리를 감겨드
렸어요

이모의 미용실입니다.
이모는 맞고 사는 여잔데요, 아줌마들은 내놓고
同情했어요.

노랑머리 소년을 아십니까?
아줌마들이 참 예뻐했어요. 잡담을 하는 그녀들은
조금씩 음탕했는데요,

후딱 봄이 갈 것처럼 뭉텅, 봄나무에 꽃은 빠져버리고, 봄볕을 받는 수건 들은 희미했어요.
치밀어오르는 노랑머리 소년을 아십니까?

입맞춤
-사춘기 2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 같은 복도입니다. 그런 복도라면 나는 복도 위의 복도와
복도 아래의 복도를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걸레를 밀며 달 려갔다 달려왔지요. 그런 복도라면 어느 쪽도 이쪽이어서 우리들은 계단을 함부로 오르내렸지요.
여자애가 화장실에서 치맛단을 접고 나올 때는 말입니다, 무릎이 보일 듯 말 듯 했지만요,
이쪽과 이쪽 사이에서 못 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 우 리는 생각보다 참 욕도 잘했고
참 쉽게 웃기도 잘했습니다. 창무네 붙어서 우리는 창문만 닦았고, 그런 복도라면 우리는 복도 위의 복도와 복도 아래의 복도에서 창문만 닦겠지 만,
정말 뭐가 더 잘 보였겠습니까? 어쩌면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 같은 복도입니다.


-사춘기 3

소년이 손을 열어 보여준 건 칼이었다. 분홍색 손바닥 위로 슬몃 피가 비쳤다.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 소녀는 분명히 비웃었다. 소녀는 뚫어지게 소년을 응시했다.

여자애에게 위로를 받아본 일이 있었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것에 도 놀라지 않는 여자애가 무서웠다. 소년은 소녀의 집에 놀러 가보지 못했다. 소년도 소녀를 초대한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해수욕장의 모래밭에 누워 있는 소녀와,

볼록한 가슴에 얹어주는 뜨거운 모래에 대해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생일 파티 같은 것은 부유한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짓이다. "아무한테나 손을 벌리진 않겠지?" 소녀는 똑똑하다.
소년은 히, 웃으며 천천히 손을 오무렸다. 손가락과 함께 칼이 사라져갔 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춘기 4

그가 사라지자 바람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그를 바람의 아들이라 불렀다. 어른들은 후레자식이라고 말했다. 돌멩이가 구르지 않았다.

바람이 사라지자 그는 침을 뱉고 사라졌다. 구름의 모양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름은 더 이상 좋은 공상의 재료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냄새를 풍겼다. 저녁마다 갈비를 뜯었다.

사람들은 바람의 도움 없이 책장을 넘겼다. 바람과 함께 그가 사라지자, 몇몇 애들은 정말로 책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책에서만 폭풍이 일고 운명이 일어서는 것 같았다.

소녀들
-사춘기 5

여자애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열두 살이 되면.
좋아하는 상점이 생길 거라고 말해주었다. 너희는 매일 상점에 들러서 몇 가지 물건을 쓰다듬을 거야. 그때의 기분과 손길을 잘 기억해두렴. 열네 살이 되면, 그렇게 백 번 만지고 몇 가지 물건을 사는 동안 열네살이 된 여자애를 친구로 사귀겠지. 너흰 둘 다 상점에서 물건을 훔친 경 험이 있지. 이제는 전부 시시해졌어. 그 애가 울면서 말할 거야. 쓰다듬어주렴. 좋은 친구는 아주 부드러워.

기억할 것들이 생기지. 열두 살이 되면.
열네 살이 되면. 나뭇잎을 떨어뜨릴 만큼 깔깔깔 웃기도 했지만

친구들
-사춘기 6

주소록을 만들기로 한 날이었어요.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내가 없고 저기에 내가 있고 저기에 내가 없고 3시에 바닷가 에 있었고…… 정말 시들을 쓰고 있더라구요. 우린 모두 일목요연해지려고 모였다구.

우리에겐 특별한 날이잖아. 실용적인 주소록을 만들기로 해. 우린 모두 지쳤기 때문에 동의했어요. 무섭게 조용해졌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내가 모임에 빠진 거 애들이 아니? 이해해. 우린 너무 많아졌으니까. 나는 앰뷸 런스에 실려 가는 중이야. 지옥행을 시도했거든.

네가 대신 아무렇게나 써줘. 폭신한 침대에 내가 누워 있고 지옥문 앞에 내가 있고 다시 약국에 내가 있고 엄마 손에 잡혀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고 꽃잎이 떨어져서…… 그런데 절대 시 쓰진 마. 그냥 아무렇게나 쓰면 돼.

걘 멋진 데가 있었어. 우린 모두 조금씩 그래.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얘들아, 우린 추억하려고 모인 게 아니잖아.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모레에는 기차를 탈 거야. 가끔 우리는 여기에 있을 거야. 우린 천천히 조용해졌어요.

김행숙 [ 1970 ~ ]

김행숙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99년‘현대문학’에 <뿔>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 현재 고려대와 상명대에 출강. 그는 1920년대 한국 문학사의 역동적인 모습에 특히 관심을 두고 박사 학위 논문으로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의 근대성 연구]를 씀.

새로운 느낌에 시인의 강연을 들으니 매우 자기 주장과 표현이 분명한 시인 이였다. 젊으면서도 마음속에 내제되어 있는 많은것을 보여 줄수있는 그러한 가능성이 많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감성적인 시인의 모습보다는 똑소리나는 우등생을 바라보는 듯했다.

 

'마음의 명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산 별곡  (0) 2005.12.28
햄버거에 대한 명상  (0) 2005.12.26
자연으로 호흡하는 詩  (0) 2005.12.02
베아트리체를 위한 詩  (0) 2005.11.28
그대에게  (0) 200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