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자연으로 호흡하는 詩

소담이2 2005. 12. 2. 03:17

 

 

호랑이 발자국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
손택수 [한국일보 신춘 문예당선시 1998년]
 

연탄이 떨어진 방, 원고지 붉은 빈칸 속에 긴긴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살아서 무덤에
들 듯 이불 돌돌 아랫도리에 손을 데우며, 창문 너머 금 간 하늘 아래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전학 온 여자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보, 고, 싶, 다, 보, 고, 싶, 다 눈이 내리던 날들
 
벽돌 붉은 벽에 등을 기대고 싶었다 불의 뿌리에 닿고 싶은 하루하루 햇빛이 묻어 놓고
간 온기라도 여직 남아 있다는 듯 눈사람이 되어, 눈사람이 되어 만질 수 있는 희망이란 벽돌
속에 꿈을 수혈하는 일
 
만져도 녹지 않는, 꺼지지 않는 불을
 
새벽이 오도록 빈 벽돌 속에 시를 점화하며, 수신자 불명의 편지만 켜켜이 쌓여가던 세월,
그 아이는 떠나고 벽돌집도 이내 허물어지고 말았지만 가슴속 노을 한 채 지워지지 않는다
내 구워낸 불들 싸늘히 잠들고 비록 힘없이 깨어지곤 하였지만
 
눈 내리는 황금빛 둥지 속으로 새 한 마리 하염없이 날아가고 있다


외딴 산 등불 하나
손택수

저 깊은 산속에 누가 혼자 들었나
밤이면 어김없이 불이 켜진다
불을 켜고 잠들지 못하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누군가의 불빛 때문에 눈을 뜨고
누군가의 불빛 때문에 외눈으로
하염없이 글썽이는 산

그 옆에 가서 가만히 등불 하나를 내걸고
감고 있는 산의 한쪽 눈을 마저 떠주고 싶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詩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마음에 와 닿는 시 세편을 올려 본다.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 이다.

문학의 밤이 끝나고 뒷풀이로 시인을 만날수 있었다. 깔끔하고 예리한 눈초리를 지닌 경상도 사나이 였다. 부산의 어느 학원에서 교사로 일하며,이번 상경은 약혼녀와의 동행 이였다.

시인의 겸손하며 조심성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차도 나누어 마시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또 싸인도 부탁하고 시작의 궁금한 점도 들었다.  호랑이 발자국은 주옥같은 시들이 많은 시집이다. 요즈음은 들고 다니면서 여러 시들을 감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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