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힘이 들어 있는 詩

소담이2 2005. 10. 19. 08:48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안 도 현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1년 대구 매일 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당선

시 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어른을 위한 동화<연어> <관계> <사진첩>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수상경력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너에게로 또다시 ... 안도현 시인의 강연을 듣고,

그 얼마나 오랜 세월을 짙은 어둠에서 서성 거렸나? 내마음을 닫아 둔채로 헤메이다 흘러간시간 잊고싶던 모든 일들을 때론 잊은듯이 생각됐지만 고개 저어도 떠오르는건 나를 보던 젖은 그 얼굴 아무런 말없이 떠나 버려도 때론 거짓말로 멍들이며 울려도 내 깊은 방황을 변함없이 따뜻한 눈으로 지켜 보던 너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 오기 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가? 이젠 나는 알았어 내가 죽는날까지 널 떠날수 없다는걸 ...

10여년만에 변진섭군의 노래를 불러 보자는 안도현 시인의 제안에 이노래 를 기억 하는사람은 몇 없었다. 나도 우리집 애들이 한참 10대 일때 좋아 했던 노래라서 많이 들었기에 잘 알고 항상 부르던 노래이다. 노랫 말중에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 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가? 했듯이 가슴에 다가오는 시를 이야기 하려 함이리라. 손끝으로 쓰지 않고 가슴 으로 쓰는 시의 절절함이 이노래 가사에 묻어 있다.

김수영님의 꾕한 눈의 시선이 부러 웠다는 시인은 가슴으로 쓰는 시 현실 에 절실함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시를 써왔음을 들었다. 외세에 간섭 없이 쓰고 싶어서 쓴 "서울로 가는 전봉준" 시를 작가의 목소 리로 들으며 척외척화 {외를 배척하고}의 단어가 유독히 힘있게 들림도 오공시절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들렸다.

그시절 일개의 보잘것 없는 시민인 나의 생활 조차도 숨막히는 삶의 연속 이였고 역겨웠던 나날 들이 였다.눈뜨면 거만한 얼굴에 호령조의 목소리가 TV 화면을 채웠으며 왜? 그다지도 데모가 끝일날이 없었는지? 령 **의 치맛 바람에 연대 앞을 지나 칠려면 학생들의 몸부림은 "대머리, 주걱턱은 물러 가라" 왼손은 이마로 오른손은 턱을 내빼면서 외치는 구호가 귀에 쟁쟁하다. 그토록 글을 쓰고자 해도 시대적 억압과 구속 속에서 말조차 글조차 마음
대로 할수 없었던 시절 그래도 문학의 뿌리들이 견고히 건재 해온 것을 오늘도 확인할수 있었다.

질문중에서 촌지에 관한 가슴 뜨거운 이야기, 촌노의 5000원은 나의 마음 까지도 따듯하게 해준다. 우리집에서도 매년 학기말이 되면 단임 선생님께 촌지 대신 촌서를 보낸일이 많다. 갈릴지브란의 시집을 받아든 선생님이 꼭 사려던 책인데 하는 말을 전해 들으며 ... 누가 이 시인을 좋아 하시니? 우리 애 왈! 책방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것이라고 해서 사왔어요 ...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운 말이다 시 한편 드려다 볼 시간조차 없으면서 선물은 시집으로 했던 우리 애 중학시절의 한 토막이 스냅 사진처럼 뇌리에서 스쳐 지나간다.

글은 쓰면 쓸수록 힘 들어 지고 내가 절실해 지지 않으면 시가 절실해 지지 않는다 말을 들으면서 절실함을 아직도 절절히 못느끼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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