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저녁, 동료기자와 함께 최근 안국동에 문을 연 ‘시인학교’를 찾았다.
시인학교는 지난 1984년 두레시 동인들이 인사동에서 운영했던 까페로 신경림, 이생진, 함민복 시인 등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편안한 쉼터였지만 200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가 2년 후인 올 6월초 동인 성덕용, 박재웅 시인 등이 돈을 모아 다시 학교문을 열었다. 학교장은 동인 정동용 시인이다.
인사동 시절 시인학교의 유명한 일화로는 시인 기형도와 천상병이다. 천상병 시인은 타계하기 전 3년 전부터 시인학교를 번질나게 드나들었고, 기형도 시인은 어느날 시인학교에 들렀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는 것.
추억도 많고 사연도 많은 시인학교이다.
기자가 찾은 날 시인학교는 시문학회 첫 모임으로 시낭송회를 열고 있었다.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모여 자작시나 동인 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모두 등단하거나 시집을 낸 정식 시인은 아니다. 시를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온 이도 있었고, 시는 잘 모르지만, 그냥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사람의 정이 그리워 찾은 이도 있었다.
낭송을 뒷받침해주는 멋들어진 배경음악은 없었지만 그곳 사람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낭송을 하며 감정을 잡아나갔다. 작은 까페 한복판을 가로지른 수많은 시집과 벽에 걸려있는 유명한 시인의 동판 시 작품. 공간이 되는 곳에는 어느 곳이라도 시 작품이 걸려있는 시인학교 풍경.
시인학교는 시인이나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열려있는게 아니다. 시를 특별한 사람이 쓰거나 배부른 이들이 할일 없어 토해내는 딴나라 세상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시인학교에 모여 술 한 잔 하면서 껄껄 웃고 목소리를 높여 흥을 돋우기도 하는, 때로는 이유 없이 불러제끼는 투박한 노랫가락,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시요,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이 거하게 취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누구며 왜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는가 하고 자문을 하기도 하지만 그 답은 쉽게 찾지 못한다. 시인학교에서 그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인학교에는 시인이 없다. 정말 유명한 시인을 찾으려면 서점 시집코너 중 베스트셀러 앞에 가면 된다. 시인학교는 시인은 없고 시만 있는 곳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든지 사람이 들어와 깔려 있는 시를 먹으면 된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시낭송회가 열린다.
<새로 문을 연 안국동 시인학교>-사진 윤태
<실제로 보면 굉장히 은은하게 보인다>-사진 윤태
<주방 후드에 걸린 시>-사진 윤대근
<자작시 낭송중인 김태영 님>-사진 윤대근
<시인학교 내부 풍경>-사진 윤대근
<시인학교 오랜 단골 박중식님>-사진 윤대근
<시인학교 교감선생님 격인 성덕용 님>-사진 윤대근
<감정 실어 시 낭송 하는 이용석 님>-사진 윤대근
<시인학교 교장 정동용 님>-사진 윤대근
<맥주병도 정겨워 보이는 까페 시인학교>-사진 윤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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