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나그네

소담이2 2006. 3. 1. 19:24

 

 

박목월 시인께서 소박한 생활로 항상 업드려 시를 쓰셨기에 겨울이면 속내의가 팔꿈치와 무릎이 잘 헤어진다고 들었다.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윤사월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산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가정(家庭)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 [1916 ~ 1978]

본명 : 영종(泳鍾). 경상북도 경주 출신.
1935년 대구의 계성중학교를 졸업 46년 무렵부터 교직에 종사
47년 한국문필가협회 상임위원 1933년 《어린이》지에 동시<통딱딱 통딱딱>이 특선 같은 해 《신가정(新家庭)》지에 동요 <제비맞이>가 당선된 이후 많은 동시를 씀 55년 시집 《산도화(山桃花, 1954)》로 제3회아시아자유문학상, 68년 《청담(晴曇)》으로 대한민국문예상 본상(本賞) 등을 수상 수필집 :《구름의 서정(1956)》 《토요일의 밤하늘(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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