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의 이야기

김유정 역 이야기

소담이2 2005. 12. 2. 03:23

 

마지막 가는 닭의 해를 맞아 작은 간이역 하나 떠 올립니다.

을유년을 맞아 닭과 연관된 작가와 작품이 해처럼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930년대 한국 소설 문학에서 빼놀 수 없는 김유정의 ""동백꽃""은 닭싸움으로 더욱 유명하지요? 순진한 남자 주인공과 야무진 점순과의 사랑의 심리전은 닭싸움의 토속적인 작품으로서의 우리 단편의 진수기 때문에 닭의 해를 맞아 더욱 그렇습니다.

연초 탁월한 언어 감각과 향토성, 해학성, 열등적인 인간의 새로운 인물 창조등으로 유명한 김유정을 바로 기리기 위해 기존의 역명을 바꾼"김유정역을 다녀왔습니다.

"여기는 ""김유정역""입니다."
기관사의 안내 방송을 들으며 이름의 참신함에 새삼 기뻤고, 그렇게 불러주는 기관사에게 진정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해 보았던 하루, 지난 해(2004년) 12월 1일부터 경춘선 ""신남역""이 ""김유정역""으로 이름을 바꾼 곳에서의 기분을 느끼면서, 늘 살아가면서 치열성에 몸부림을 쳐야하는 우리 세상사를 을유년에 의미를 더욱 두기 위해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실었던 것입니다. 시실 우리 나라 철도 백년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 이름을 가진 역이 새롭게 탄생을 기뻐하기 위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렇게라도 다가가 보는 작은 나의 작은 정성으로라도 전하지 않으면 안될 마음이 그동안 벅차 오르고 있어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김유정역’은 〈동백꽃〉과 〈봄·봄>의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이름을 따서 새로 붙여진 것으로, 러시아에는 톨스토이역이 있고 미국에는 존 에프 케네디 공항처럼 한국 철도 105년 역사에서 사람 이름을 딴 역이 된 것으로 처음있는 일이라고 들어 알고 있지만 막상 역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더욱 ""김유정역""이라는 현판이 유유히 흐르는 역사의 흐름 속을 작품의 물살을 가르며 작가를 태워 망망대해에 떠가는 뗏목처럼 그렇게 순수하고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런데다가 지금 우리 나라는 전국이 도시화 되어 옛날 경춘선의 낭만이 예년과 다른 세태에 비추어 나타난 그 작은 농촌 간이역은 아직 남아 있는 농촌의 모습을 실감하고 다행스럽게 도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아슬아슬한 모습을 느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역 이름이 이렇게 바뀐 것은 역 앞 실레마을(떡시루처럼 생겼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 바로 김유정의 고향이기 때문이고, 그의 소설 대부분은 고향인 실레마을을 무대로 삼고 있어서 김유정 문학의 산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바뀐 배경에는 현재 그 마을의 촌장(김유정 문학촌의 장)으로 있는 금요일의 문학이야기에도 나오셨던 ""우상의 눈물""을 쓴 전상국 작가를 포함한 지역 문인들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남긴 김유정 선생을 기리기 위해 ""김유정역""은 그동안 사용되던 ""신남역"" 명을 바꾸자는 문인들의 줄기찬 요청과 주민, 그 의견을 수렴한 춘천시와 철도청이 합심해서 이루어 낸 것입니다. 정말 좋은 일로 이렇게 마음의 합일을 이루어 간다면 올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더불어합니다. 김유정 문학제에 문예진흥원이 후원하였던 사실은 지당한 반가움입니다.

그의 생가를 복원한 ‘김유정 문학촌’에는〈동백꽃〉의 무대인 금병산 기슭,〈봄·봄>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김봉필의 집, 〈산골 나그네>의 주막과 물레방아 터, 〈만무방〉의 노름터 그리고 김유정이 1931년 서울에서 귀향하여 학교가 없어 배우지 못하는 시골 청소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야학을 통해 농촌 계몽 운동을 벌였던 ""금병의숙""이 있습니다. 두루 둘러보며 기념관에서 얻은 자료로 농우가를 읊어 봅니다.

거룩하도다 우리집 농우회
손에 손잡고 장벽 굳게 모이었네

흙은 주인을 기다린다
나서라 호미들고
지난 엿새 동안에 힘 다해 합하니 즐거워라
오늘 일요일 또 합하니 즐거워라

삼삼오오 작반하여 교외 산보를 나가
산수 좋은 곳을 찾아 시원히 씻어보세 (김유정이 지은 실레마을 농우회가)

경춘선!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새파란 북한강 물길을 따라 창 밖을 내다보노라니 강촌 역사 교각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많은 사랑의 연인들의 이름과 사연들의 귀여운 낙서들이 밉지 않아 미소 지으며 다시 그곳을 출발하니 곧 김유정역! 남춘천역과 강촌역 중간 지점에 도시화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자리에 김유정역이 있었습니다.""김유정역""은 앞으로 경춘선 복선 철도가 진행 중이며 전철이 개통될 날도 멀지 않다고 합니다. 그의 조카 김영수 선생이 중심이 되어 복원한 생가 안의 동상은 전철이 개통되면 역 앞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뀐 김유정역..... 이름을 바꿀 수 있었던 지난 해를 2005년 을유년(乙酉年) 닭의 해에 비추어 바라보면서, 소설 ""동백꽃""에서 움을 사랑으로 꽃피워 낸 요절한 천재 작가 김유정을 둘러둘러 생각한 하루였습니다.아주 깔끔하고 알차게 꾸며 논 기념관에서 마냥 머무른 하루였습니다.

금요지우님들! 역에 내리면 곧바로 새로 복원된 김유정 생가가 나오고, 김유정 문학촌에 당도하게 됩니다. 문학 기행으로 가 볼 만 한 곳입니다.

""이상""과 아주 절친했던 ""김유정"".... 이상이 폐결핵에 걸려 있을 적 역시 폐결핵에 걸려 어려움을 겪던 친구 김유정에게 "우리 같이 죽자"고 하자 그럴 수는 없다고 거절했던 김유정의 요절이 더욱 안타까운 해입니다.

참신한 명명(名命)의 전환이 한국 문단을 더욱 기리고 빛나게 할 것입니다.

박선생님 글 잘 보았습니다. 언제즘 한번 다녀 오고 싶은 곳입니다.
자료가 있어서 조금 올려 봅니다. 김유정의 재치라도 보기 위하여 ...


동백꽃
김유정(金裕貞) 단편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나흘 전 감자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는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체만척체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 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듸?"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또는,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발단부) (중략)

1936년 《조광》지에 발표되었다. 주인공인 17세 된 <나>는 점순이네 집 소작인의 아들이고 점순이는 <나>를 괴롭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계집애이다. 하루는 점순이가 <나>의 집 수탉을 잡아다가 험상궂게 생긴 제집 수탉과 싸움을 붙여서 거의 죽게 만들었다. 나는 닭이 고추장을 먹으면 싸움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김유정 (金裕貞 1908∼1937)
소설가. 강원도 춘천 출생. 본관은 청풍.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 중퇴, 한때 고향에 금병의숙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금광에도 손을 대었다. 1935년 《조선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 《노다지》가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동백꽃은 아주 예전에 배꼽을 잡으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싸움에서 이기라고 고추장 먹이는 장면이 왜 그리도 재미 있고 웃음이 나는지 많이 웃었다. 마지막에 둘이서 끄러안고 딩구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콩딱이기도 했다. 봄봄도 언제 키가 크나하고 안타까워하며 읽었다.


> 윗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최선생님 고맙습니다. 김유정은 서울 재동초등학교 출신입니다.(혹 최선생님의 선배님이 아니신가 해서 생각) 김유정은 열살 전에 부모를 다 잃어 조실부모한 작가입니다.

2남 6녀 중 일곱째인 김유정의 작품에는 큰 형 김유근의 방탕한 생활을 그린 ""형""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형과 스무 살이나 차이였던 김유정은 형이 서울 관철동 재산을 다 탕진하자 춘천 실레마을 생각이 나 병풍처럼 시루떡처럼 생긴 그 마을로 내려가 살았던 것입니다.
형이 생활비도 안 주는 가운데 누이집과 형 김유근이가 돌보지 않는 형수 밑에서 가난과 병마에 휩싸이면서 다니던 휘문고보를 다닐 적 결석이 대학 제적으로 연결된 모양입니다. 연희전문 제적 후 보성전문에도 입학하였었으니까 사실 고려대학도 다닌 분입니다. 이곳도 도중 하차.

김유정은 명창 박록주(1904~1979)를 사랑하였습니다.김유정은 박록주가 나가는 술집 앞에서 밤을 새워 기다리다가 인력거에 탄 그녀를 끌어내려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 짝사랑의 2년 세월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자전적 작품 ""두꺼비""와 ""생의 반려""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한 문학 청년의 가슴에는 오로지 살앙의 상실감과 형의 타락으로 인한 경제적 불편, 그리고 건강 악화 등이 그를 낙향하게 만들었으며 그는 바로 그 시점에서 가난하지만 김유정은 순박한 농촌 사람들을 기억해 내고 그들과의 인생살이로 생을 장식했습니다.

참고로 매년 김유정 문학촌에서는 추모 행사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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