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민화에 주로 등장하는 나무, 돌, 거북, 모란꽃, 새, 호랑이, 용, 책 등은
참 평범해보이는 소재지만 여기에는 다 숨은 뜻이 담겨있다.
별당의 딸애 방에는 부귀와 기쁨이 가득하라고 모란도를,
공부하는 아들의 방에는 책가도를,
손님이 주로 쓰는 사랑방에는 절개와 등용의 뜻이 담긴 대나무도나 산수도를,
안방인 아녀자의 방에는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초충도와 어해도를
병풍에 담아 늘 바라보며 의미를 되새겼다.
십여년전부터 나는 우리네 삶을 담은 민화에 관심을 갖고 이에 관한 자료를 모아왔다.
특히 기록화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 궁중 기록화로 1773년 청계천 준설 공사때 그려진 "청계 어전 준천도"가 있다.
청록 담채로 그려진 그림 위쪽에는 영조임금이 자리하고 있는 정자앞 임시 차일과
그 앞에 열을 지어 앉아있는 신하들, 양옆에 호위병들과 오른쪽으로 황용기[黃龍旗]가 보인다.
차일 옆 노송이 드리워진 숲속에는 전각들과 연못이 보이고,
논밭 앞쪽에는 활쏘기의 표적이 여러개 보인다.
또, 말을 타고 활을 어깨에 맨 궁사들이 들어오는 주변으로 나무들이 울창하다.
두번째 폭의 그림에는 오간수 다리처럼 생긴 이름모를 다리 위에
차일을 치고 앉아있는 임금과 신하들, 호위병과 내관들이 보이고
임금이 오랜 시간 머무를 막사가 보인다.
개천 안에는 작은 빨간 깃발로 구역을 나누어 표시하고
중앙에는 일꾼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커다란 청기[靑旗],황기[黃旗],홍기[紅旗]가 꽂혀있고
소들이 쟁기질을 하는 가운데 세사람씩 가래로 흙을 퍼내며
개천 바닥을 준설하느라 부산한 일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개천 양옆에는 노인들과 백성들이 독상을 받고 앉아있는데
이는 개천을 준설하는 일이 일꾼들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으로써의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시기적으로는 그림 양켠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양버들과 나무들이 울창한 것으로 보아
장마가 지기전의 한 여름으로 추측된다.
1760년(영조 36년) 2월 18일부터 4월 15일까지 두 달간에 걸쳐 시행된
청개천 준설 공사는 연 20만명이 동원되고 3만 5천냥과 쌀 2,300백석이라는
그 당시엔 어마어마한 자금을 들인 대역사였다.
해마다 큰 홍수피해를 피할 수 없었던 도성 내외의 백성들이 기꺼이 동원에 응했고
부자들은 별도로 많은 인력을 기부했으며
한성 밖의 경기도 주민까지도 참가했던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1773년(영조 49) 6월 영조는 다시 한번 개천 정비를 위한 공사를 실시하였다.
1760년 공사때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여 시행하지 못했던, 개천 양안에 석축(石築)을 하는 작업이었다.
훈련원, 금위영, 어영청 등 삼군문(三軍門)이 작업구간을 3개로 나누어 진행하였는데
양쪽 제방에 돌을 쌓아 튼튼하게 하고, 구불구불한 수로를 곧게 바로 잡았다.
또한 양안에 버드나무를 심어 큰비가 와도 제방이 무너지지 않도록 대비하였다.
1773년의 준천은 시작한지 2개월 후인 8월초에 끝이 났다.
공사가 마무리 되자 영조는 왕세손(후에 정조)과 함께 광통교에 나가 완성된 석축을 돌아본 후,
역부들의 공로를 치하하고 스스로 「준천명(濬川銘)과 소서(小序)를 지어
자신이 80 평생 동안 준천사업에 얼마나 공을 기울였는가 밝히고 있다.
이렇듯 청계천은 일일이 열거하기에 힘들 만큼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있다.
홍수를 대비하여 수많은 백성이 임금의 독려 아래 대 역사를 행하는 그림은
청계천 준설 공사가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즘 같았으면 사진 한장으로 쉽게 남겼을 광경이지만
이름 모를 화가가 애써 그린 그림은 공사의 이모저모를 여과없이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기에
당시의 기록화 중에서도 아주 귀중한, 청계천 산 역사의 한 페이지다.
새단장한 청계천이 서울시민에게 훌륭한 삶의 쉼터가 되어줄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맘이 설랜다.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와 각종 곤충들이 서식하고,
더운 여름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힐수 있는 청계천이 그 이름처럼 언제까지나 변치않고
서울시민과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청계 어전 준천도"를 새삼 감상해 보았다.
참고 자료 : 서울시 홈 페이지 - 청계천의 역사-
한국의 미 - 풍속화 - 1985년 중앙일보 편집부
ps: 복원된 청계천의 물가를 첫날은 분수대에서 광교까지 두째날은 광교에서 관수교가지 둘러 보았습니다. 산책하고 물소리 듣기에 시름의 겨운 마음을 씻어주는 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