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正祖/1752~1800)
조선의 제22대 왕. 이름 산(). 자 형운(亨運). 호 홍재(弘齋). 영조의 손자로 아버지는 장헌세자(莊獻世子:思悼世子),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惠嬪)이다. 1759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되고, 62년 2월에 좌참찬 김시묵(金時默)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를 맞아 가례를 치렀다. 이 해 5월에 아버지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64년 2월 영조가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孝章)세자의 뒤를 이어 종통을 잇게 하였다
정조는 선왕 영조 때부터 시작된 궁성 밖 행차뿐만 아니라 역대 왕릉 참배로 도성 밖으로 나와 많은 백성들을 직접 만나는 기회를 만들었다. 100회 이상을 기록한 행차는 단순한 참배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민원을 접수하는 기회로도 활용하였다. 그는 재위 3년째에 상언(上言)·격쟁(擊錚)의 제도에 붙어 있던 모든 신분적 차별의 단서들을 철폐하여 누구든 억울한 일은 무엇이나 왕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도록 하여 능행(陵行) 중에 그것들을 접수하도록 하였다.
화성행차 8일을 보면 정조의 지극한 효성과 백성들을 두루 살펴서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이루도록 노력하고 아버지인 사도세자 [장헌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한을 달래 드리기 위한 노력이 절절히 보인다. 서울에서 몇일씩 이동을 하며 능행을 가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수하의 움직이는 백성만 보아도 한없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 [반차도 인원 1779명, 전체 동원인원 6000명]
더욱 놀라운 것은 음식이 어떤 종류가 정조에게 올려졌고, 그물품의 가격은 얼마이고 조리 방법까지 상세히 기록한 일이다. 그리고 누가 어떤 벼슬의 인물이 능행에 참가 했는지도 자세히 나와 있다. 또 능행도를 도화서 화원이 자세히 그려서 8폭의 평풍으로 기록한점도 특이 할만큼 좋은 사료이다.
능행중 혜경궁홍씨가 몸이 불편하셔서 전진하는 속도도 천천히 하라는 지시도 내려가고 하루 묵을 곳도 어디가 좋겠다는 배려는 얼마나 효심이 깊고 어머니에 대한 예의를 지켰는가 알수 있다. 이러한 자랑스런 자료를 자세히 볼수있는 정조의 화성행차 능행 반차도를 소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