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보복폭행 사건이 주는 교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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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회사 동료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재벌 회장이 ‘깡패’를 동원해 흉기로 폭행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말한 영화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다. 지난 4월24일 상영을 시작한 이래 4800만 국민이 TV와 신문을 통해 관심있게 지켜봤고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 특파원들을 통해 해외에까지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관객수에서 그간 국내 최다 기록을 세운 영화 ‘괴물’을 압도적으로 눌렀음은 물론이다.
흥행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의 흥행 대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뛰어난 작품성(줄거리)과 호화 출연진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폭행-보복폭행-외압-언론 보도-경찰 수사-자체 감찰-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숨가쁜 구성력이 단연 돋보인다. 재벌 회장, 조폭, 전현직 경찰 수장과 같은 초특급 출연진도 흥행의 숨은 공로자임에 틀림없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번 흥행의 일등공신은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거짓의 놀라운 위력을 새삼 느낀 까닭이다. 때늦은 가정이겠지만 만약 김 회장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들에게 사죄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리석은 부정(父情)이 저지른 단순폭행쯤으로 간주돼 아마도 흥행이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어떤 폭행도 하지 않았고 납치폭행 현장인 청계산에 간 적도 없다고 했다. 완전 ‘오리발’ 작전이었다. 거짓말은 결국 거짓의 끝없는 릴레이로 이어졌다.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하나하나 진상이 드러나면서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거기에다 한화 측과는 어떤 접촉도 없었다던 이택순 경찰청장의 또 다른 거짓이 파장을 증폭시켰다.
거짓은 신뢰를 좀 먹는 곰팡이와도 같은 존재다. 서로 속이는 사회에선 건전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사람을 서로 믿지 못하면 그 사회의 결속력이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저명한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트러스트(TRUST)’에서 정직을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한 국가의 국력과 경제력은 자본과 기술이 아니라 문화·사회적 요인에 근거한다고 지적했다. 그 문화·사회적 요인이라는 것은 바로 신뢰성이다.
‘얼마나 서로 믿는 사회인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가? 믿을 수 있는 관계인가?’ 그에 따라서 나라의 정치·경제·문화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자본으로 나라가 서고 우수한 기술이 있다고 해서 경제가 되는 게 아니다. 국가 구성원인 개인 간의 신뢰성이 근본이라는 점을 후쿠야마는 역설한다.
후쿠야마가 우리 사회의 건강을 평가한다면 과연 어떤 점수를 주게 될까.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에 걸맞은 신뢰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일상생활에서 정직이 생소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정치인들은 말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고 있다. 사기꾼이 판을 치고 법원장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의 먹잇감이 되는 세상이다.
김승규 전 국정원장은 법무장관 시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범죄로 ‘사기·위증·무고’를 꼽았다. 모두 거짓말과 관련된 범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분석에 박우동 전 대법관도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공감을 표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2003년의 경우 우리나라의 사기범죄 건수는 일본의 26배, 무고는 39배, 위증은 16배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한다’는 결론이다.
이제, 한달여간의 대흥행을 몰고 온 보복폭행 사건은 종영으로 치닫고 있다. 영화는 막 자리를 뜨려는 관객들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거짓은 사는 길이 아니라 몰락으로 향하는 입구라고.
배연국 지방팀장
2007.06.05 (화)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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