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의자 - 이정록

소담이2 2006. 6. 12. 13:48

 

의자

  이 정 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목련나무엔 빈방이 많다/ 이정록

 

목련꽃 환한
낡은 기와집

 

나무대문 앞에
弔燈이 걸려있다

 

할아버지가 숨을 놓자
혼자 살던 집에 사람 북적인다

 

저렇게
食口가 많았던가

 

가까이 다가서니
언제부터 펄럭였나
빛 바랜 달력 한 장

 

빈방잇슴
보이라 절절 끄름

 

목련나무의 빈방 안에서
哭소리 새나온다

 

건을 벗어
問喪하는 목련꽃 이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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