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목마와 숙녀

소담이2 2006. 1. 30. 06:39

 

 

박인환이 잘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을 마시고 몸을 상해 갈때, 김수영을 만나려고 애썼으나 생활에 바쁘고 농사를 짓는 김수영도 친구들을 만나려 해도 서로 어긋나서 못 만나고, 박인환은 김수영 여동생에게 소식을 듣는다.

목마와 숙녀
박 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져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을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져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 대 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것이 떠나든 죽든
그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한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의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朴寅煥 1926∼1956 시인. 강원도 인제(麟蹄) 출신.
1939년 서울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했으나 41년 자퇴, 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肆)를 경영. 김광균(金光均) 친교를 맺음 《자유신문》 《경향신문》 등의 기자 49년 김병욱(金秉旭)·김경린(金璟麟) 등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을 발간, 김수영(金洙暎)·김경린· 양병식(梁秉植)·임호권(林虎權) 등과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냄.50년 피난지 부산에서 <후반기(後半紀)> 동인들과 함께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함.55년 《박인환시선집》, 작고하기 1주일 전에 쓰여진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려짐. 76년 장남 세형(世馨)이 《목마와 숙녀》를 간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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