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예술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회고 전시회를 보고서

소담이2 2009. 6. 3. 00:39

 

 

 

 

 

 

 

 

6월 2일 오후 몰아치는 바람과 퍼 붓는 비를 맞으며 빗속을 뚫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시립 미술관에서 하는 르누아르 전을 보기위해 도슨트의 설명 시간을 맞추어 간다고 갔어도 시간이
지났기에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관람을 시작했다. 센서로 작동하는것이 아니라 그림 앞에가서
버튼을 누르고 설명을 듣는 수동식이였다.

 

도슨트의 설명없이, 오디오 가이드 설명없이 그림들을 감상하기란 알맹이 없는 수박 겉 할기식의
감상이 될듯하여 차근하게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고 있으니 그림의 제작년대와 배경, 작품설명이
그림을 자세히 보는 기회도 되고 그림공부에도 도움이 되는것 같다.

 

작품들을 보고 로비에 있는 아트 샵에서 도록을 한권사서 들고 나오니 비는 그쳐있었다.
집에 오는길의 덕수궁에 들러서 궁안의 숲속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 왔다.
[밑에 그림 설명은 보도 자료에서 위에 그림들도 얻어 온 것입니다]

 

 

[7번째 그림]  '개와 함께 있는 르누아르 부인'(1880)

르누아르는 1880년 무렵 당시 스무살 남짓의 재봉사 알린느 샤리고(1859~1915)와 처음 만났다.
 먹성 좋은 알린느를 보고 르누아르는 "연약해보이려고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여자들보다 훨씬 낫다"
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알린느는 1881년 르누아르의 이탈리아 여행에 동행하면서 자주 모델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시골무도회'의 모델이 된 알린느의 화사한 미소와 충만한 행복감은 그녀에 대한 르누아르의 애정
을 잘 보여준다.

알린느는 장남 피에르를 출산한 5년 후인 1890년 르누아르와 결혼, 장과 클로드까지 세 아들을
낳았다. 르누아르보다 4년 앞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남편의 곁을 지키며 작품 활동을 도왔다.
 르누아르와 알린느는 알린느의 고향인 파리 동쪽 에수아에 나란히 묻혀있다.


[6번째 그림] '장 르누아르의 초상'(1899)

이 아이는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인 장 르누아르(1894~1979)이다. 당시에는 남자아이를 치마를
입히고 머리를 기르는 등 여자아이처럼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훗날 이 아이는 세계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거장이 된다.

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예술적 소양을 그림이 아닌 영화적 상상력으로 발전시켜 프랑스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 시대의 황금기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게임의 규칙' '위대한 환상' 등이 그의 대표작
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 르누아르'라는 책을 출간해 아버지를 기억하기도 했다.

장 르누아르는 '데데'라는 이름으로 불린 아버지의 모델이었던 앙드레 외쉴링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번 전시작 중 '꽃장식 모자를 쓴 데데'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 모델이었던
데데는 장 르누아르의 영화 속 히로인으로도 등장한다.


[ 2번째 그림] '바느질 하는 마리-테레즈 뒤랑-뤼엘'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꼽히는 명작이다.
빛나는 볼과 입술, 환상적인 색감의 꽃과 의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복원 중인 작품을 어렵게 대여해
왔다는 후문이다.
'해변가의 어린 소녀들' '책 읽는 여인' 등 옆 얼굴이 약간 보이는 비스듬한 뒷모습은 여성미를 강조한다.

르누아르가 그린 가족 초상화 중 '광대복장을 한 코코'는 화가의 막내 아들이 주인공이다.
정작 코코는 붉은색 풍선형의 원피스 입기를 무척 입기 싫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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