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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춤을 사랑했던 왕세자, 효명 |
▣방송 : 2008. 6. 7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손현철 PD
▣글,구성 : 박민경 작가
19세에 건네받은 나라의 운명 3년간의 대리청정… 그리고 급작스러운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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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효명, 그의 화려하고도 날카로운 춤사위가 시작된다! |
춤추는 왕세자
효명세자. 그는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세자이다. 4살 되던 해 왕세자로 책봉된 그는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한국의 루이 14세로 비교되기도 하는 효명세자는 여느 국왕들과는 달리 예술을 사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술을 현실 개혁의 수단으로 삼고자 한 왕이었다. |
단청도 없는 북향 방에서 홀로 앉아 나라를 생각하니
18세기 초는 김조순을 위시한 안동 김씨 계열을 비롯한 외척세력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나라의 살림을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
 ▲효명세자가 공부하던 '기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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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척 세력들에 권력과 부가 집중되었고 삼정의 문란 등 각종 사회 병폐까지 만연했다. 설상가상으로 극심한 흉년이 찾아오자 급기야 순조 11년, 평안도 지역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 앞에 무력한 순조는 총명한 아들 효명에게 실질적 국정 운영권을 주기로 결심한다. | |
날카로운 예악정치의 칼을 빼들다
 ▲순조기축진찬의궤 ▲정재무도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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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새를 건네받은 19살의 어린 세자. 암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카드는 예악정치였다. 효명세자는 수차례의 성대한 연회를 통해 국정주관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국왕의 권위를 높이고자 했다. 국왕권의 강화는 곧 왕권 견제세력, 외척 세력의 약화를 의미했다. 화려한 잔치 뒤에는 그들을 향한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
3년 3개월의 짧은 대리청정, 그리고 급작스런 죽음
대리청정 3년이 되던 1830년, 효명세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아버지 순조를 대신하여 국정쇄신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효명. 어린 나이에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외척세력을 견제해나가며 새롭게 나라를 꾸려갔지만 갑작스러운 병을 얻어 병을 얻은 지 십여 일 만에 끝내 목숨을 다하고 만다. |
박규수와의 운명적 만남!
효명세자는 어느 날 자하동 부근을 지나치다가 박규수와 만나게 된다. 그는 열하일기의 저자인 박지원의 손자로 할아버지 박지원의 북학사상을 받아들인 개혁 실학자였다. 대리청정 을 시작한 후 효명세자는 박규수와 함께 새로운 조선을 꿈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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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명세자 왕세자입학도
| 효명세자는 예술을 사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술을 현실 개혁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
조선의 문화를 꽃피우다
조선조 말까지 전해지는 궁중무용 '정재' 총 53수 중 무려 26수가 효명세자의 손을 거쳤다. 조선 정재 사상 최초의 독무 '춘앵전', 당나라 시인 이백이 고구려 춤을 보고 읊은 시를 형상화한 '고구려무', 신라시대 화랑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사선무' 등 당시 궁중무용으로선 파격적인 정재를 완성했다. |
 ▲ 효명세자가 만든 궁중 무용 '화(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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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못이 맑으니 꽃 그림자 곱기도 해라 온 산천 붉어 비와 이슬을 머금으니 우리 임금 깊은 덕이 창생에 미쳐 이같이 고르구나 - ‘춘당대’, 효명세자 作 | |
예를 통해 국정를 펴고자 했던 효명세자. 이것은 그의 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트 디렉터 국수호, 효명을 말하다 안무가 국수호가 준비 중인 국립무용단의 정기 공연 '코리아 환타지'의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효명세자가 직접 창작한 궁중 무용인 '춘앵전', '무산향' 등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 될 예정이라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