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행을 위한 속 깊은 길잡이 디자이너 박훈규 [레이디경향] 2007년 07월 11일(수)
박훈규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무대에서는 VJ(Visual Jockey)다. 여행 중 그린 그림과 사진, 느낌을 담은 글로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디자인과 여행에 대해 얘기하던 그는 문득 "어려운 얘기만 한 것 같다”며 걱정했다. 걱정 말라고 했다. 누구나 한번 고민해볼 만한 이야기니까. 그래픽 디자이너 박훈규수많은 여행 관련 서적을 읽었지만, 그의 책만큼 역마살을 자극하는 책은 없었다.
그의 책 「박훈규 오버그라운드 여행기」의 주제는 확실하다. 정보 위주의 여행 안내 서적과는 다르다. 그의 주제는 ‘디자인’이다. 런던에서 더블린까지 영국 15개 도시를 돌며 그들의 디자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카메라에 담고 펜으로 그리고 글로 썼다. 그래서 여행 얘기를 하기 전에 디자인 얘기부터 시작했다. "디자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소개하고 싶어서 책을 썼어요. 제 직업을 한마디로 하기는 좀 그렇지만(웃음), 워낙 이것저것 해서. 책을 낸 후부터는 디자이너라고 하는 것이 가장 어울릴 것 같습니다.
” 디자이너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는 화려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디자이너의 모습은 세련된 커리어우먼이다. 자신을 꾸밀 줄 아는, 부유한 사람들이다. "(웃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디자이너는 인문과학을 ‘실천’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회에서는 무슨 아이스크림 이름처럼 쉽게 얘기하지만 철학자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어려운 얘기예요.” 디자이너의 화려한 면이 부각된 것은, 우리 사회가 화려한 부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60, 70년대의 급속한 성장을 거치며 유난히 결과물에 집착하는 풍조가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디자인은 결과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과정의 중요성에 곁점을 찍는다. "결국 여유 있게 차근차근 준비하고 계획해서 실천하는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그런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디자이너죠.” 디자인은 거시적인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거시적 안목이 부족하다. 배가 고프면 먹는 것처럼, 모자란 점이 있으면 급하게 채워 넣는다. 과정에서의 고민은 생략되고, 가장 빠르게 효과적으로 결과물을 세운다(청계천 복개 공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청계천 이야기는 뒤에 이어진다). 손재주가 뛰어나거나 화려한 치장에 익숙하다고 해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인드가 첫 번째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마인드가 두 번째다.
유럽에서는 건축과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기본적으로 6년을 공부한다. 그만큼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여행은 필수다. 디자이너 박훈규의 여행기 그의 첫 번째 책 ‘언더그라운드 여행기’는 영국과 호주를 둘러보고 그리고, 찍고, 쓴 것이다. 그는 딱 30만원을 들고 한국을 떴다. "‘언더그라운드 여행기’때의 여행은 정말 큰 상처를 입고 떠난 거예요.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저를 버렸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외국에서의 생활이,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고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보면서 치유돼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것은 20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는 거리의 화가들과 그림을 그리며 돈을 벌었다. 5천여 장의 초상화를 그리며 4백 일간 여행했다.
"두 번째 여행의 이유는 간단했어요. 상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드니까, 그냥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 깊이를 구체적으로 보고 싶었죠.” ‘대체 영국과 한국의 차이는 무엇일까’를 직접 체험하고 싶었다. 어떤 차이가 런던과 서울을 다르게 하는가, 영국 문화가 가지고 있는 힘은 무엇인지를 보고 싶었다. 여기가, 그가 만든 책이 다른 여행 서적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그의 여행은 쉼이나 관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박훈규가 들른 곳은 모두 그가 보고 싶은 장소였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담아내고 싶은 곳이었다. 한국과 영국의 차이를 느끼고, 그 간극을 메우고 싶었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저는 제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박훈규니까 가능한 여정이라고 말해요.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뜻이겠죠. 일상의 틀을 벗어나는 두려움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크니까요.” 여행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자신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목적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여행의 목적은 다양할 수 있다. 완전한 ‘쉼’을 위한 것일 수도, ‘모험’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사이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 어렵게 잡은 여행의 기회를 조금 더 의미 있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의사가 박물관에 간들, 역사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 유산을 얼마나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겠어요. 그야말로 ‘관광’이 될 뿐이죠. 제 책의 내용은 제가 아는 것, 제가 궁금했던 것, 가보고 싶었던 장소에 대한 집대성이에요.
” 레스토랑에 관심이 있고 한국의 레스토랑에 모자람을 느낀다면 여행을 통해 그 모자람을 메우는 기회를 갖는다. "예를 들어, 외국의 잡지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만들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재미있고 참신한 내용들을 채워가는지, 그게 궁금하다면 한번 떠나보세요. 직접 보고 배우는 거죠.” 아, 이 남자, 심하게 역마살을 자극한다. 떠나고 싶어진다. 영국과 한국의 차이, 그리고 여행 영국을 여행하고 느낀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다. 바로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다.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막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생활 곳곳에 디자인의 개념이 스미지 않은 곳은 없다.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 문을 열고 들어온 건물,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의 산물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더 나은 것을 고민하는 과정이 디자인이다.
영국이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는 기본적으로 신뢰와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표적으로 실천하는 곳이 바로 ‘아루프(ARUP)’라는 회사다. "우리의 목적은 거대하고 효율적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친근한 조직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의 행복이 모두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오브 아루프 경(아루프 설립자)의 1970년 연설 중에서 이 말은 박훈규의 이상과도 일치한다. 효과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위해 1인칭 네트워크 회사를 꾸린다. 각자가 전문적인 일을 하는 자유로운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것이다. "각 분야의 최고를 만나 팀을 구성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드는 작업이죠. 꿈같은 작업이에요. 하지만 영국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결과물도 뛰어나죠.” 축구를 즐기는 태도를 봐도 영국과 한국의 차이는 드러난다.
영국의 탄탄한 축구 문화는 그들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들은 공동의 승리를 위해 뭉치고, 통제하는 방법을 어려서부터 배운다. 국민들은 축구선수들이 왜 축구를 하는지, 그들 개인의 목표와 이상은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축구를 즐기고 열광한다. 하지만 한국이 집착하는 것은 승패다. 우리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어떤 화학작용으로 융화하는지, 각자의 꿈은 무엇인지, 생활에는 만족하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기는 게임’을 보고 스트레스를 풀면 그만이다. "청계천도 그렇죠. 저는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을 잘 모르지만, 청계천 프로젝트를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서울 시내 한복판에 공공의 프로젝트를 시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결과물은 실망스러웠다. 청계천은 표피적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6백년 수도 서울의 정체성은 공감하기 어렵다. 모던하고 깔끔한 내천이 도시 한복판에 흐르는 것은 멋지지만, 이제는 그 이상을 꿈꾸고 실천해야 할 때다. "영국의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1993년부터 준비해온 겁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으로 완성되는 프로젝트죠. 20세기 초 만국박람회 당시, 6백만 명이 참여했고, 그때 최초의 패션 잡지가 만들어졌죠. 영국은 현대 비즈니스의 시작이었습니다.” 공공 프로젝트는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지 못하면 실패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철학, 여유 있는 준비 과정은 필수다. 청계천은, 예술적인 일을 정치적으로 담보했을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박훈규는 디자이너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과 이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배우기 위해 ‘채우는 여행’을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 작가다. 여행의 의미는 다양할 수 있다. 온전히 쉼을 위한 것일 수도, 관광을 통해 견문을 넓힐 목적일 수도 있다. 박훈규는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여행에서 찾았다. 찾고 싶은 것이 확실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즐거움과 배움은 여행이 그에게 준 선물이다.
"아주머니들도 여행을 좀 많이 가셨으면 좋겠어요. 좋거든요, 정말.”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가정주부가 여행을 꿈꾸는 것은 유난히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쳤다면, 꿈을 잃었다면, 일상이 지겹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나이는 중요치 않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팍팍하다. 기회는 만들면 된다. 박훈규의 여정과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속 깊은 길잡이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성원
진실된 삶의 모습을 둘러보게 하는 책.
내가 그림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된 동기가 박훈규씨의 오버 그라운드 여행기 1권을 보고 난
후였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무엇인가 자신있게 할수 있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일 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을 하고 보니 너무나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둘어보고, 새로운 풍광을 접해도 보고, 여행도 가고 싶다.
외국으로 나가서 초상화를 그려줄 실력은 못되지만 풍경화는 그릴수 있는 실력은 �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물화도 연습을 하고 실력이 늘면 잘 그릴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 여행기도 써 보고싶기도 하다 몇년전 중국을 방문했을때 드넒은 대륙의 체취를 글로 다 표현이 어려웠어도 삶의 활력을 얻은 것은 매우 희망적인 현실 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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