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의 이야기

정조의 한글 편지

소담이2 2007. 10. 7. 06:56

 

 

 

 

정조가 어릴 때 숙모에게 보낸 편지

 



<왼쪽 위 여백>

叔母主前

 

상풍의
[擡頭]긔후 평안오
신 문안 아고져
라오며 뵈완 디 오
래오니 섭〃 그립
와 다니 어
제 봉셔 보고
든〃 반갑와
오며
[擡頭]한아바님겨오[添加1]셔도
평안오시다
온니 깃브와
■(오)■(니)이


<왼쪽 중간 여백>

元孫

 
발신자와 수신자 : 조카(정조ㆍ7세 이전) → 숙모(외숙모로 추정됨)
시기 : 1752년~1759년 경
크기 : 34.7cm×53.5cm
소장자 : 개인 소장 / 『御筆』에 수록
 

[현대어역]

숙모님 앞

상풍(商風, 가을 바람)에 기후(氣候)가 평안(平安)하신지 (숙모님의) 문안(問安)을 알기를 바라며 (숙모님을) 뵈온 지가 오래되오니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숙모님께서 보내신) 봉서(封書,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보고 든든하고 반가우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平安)하시다고 하니 기쁩니다.
원손(元孫)

 

 

[해제]

이 편지는『어필』(御筆)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정조가 원손이던 시절에 숙모에게 보낸 편지이다. 현재로서는『어필』(御筆)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어필』(御筆)의 체제나 어떤 것들이 수록되어 있는지 등 여타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 편지와 관련된 여러 배경에 대해서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2002년에 한국서예사특별전 22호 도록으로『조선왕조어필』(朝鮮王朝御筆)이 발행되었는데,『조선왕조어필』(朝鮮王朝御筆)에 정조가 보낸 언간이 소개되어 있다.

 

 

이 편지를 포함하여 정조가 세손이던 시절에 숙모에게 보낸 편지와 42세 때인 1793년에 홍참판댁에 보내는 편지 총 3편인데 모두 『어필』(御筆)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3편의 언간에 대해 원본 사진이 실려 있고 약간의 소개글이 실려 있어 이 편지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조선왕조어필』(朝鮮王朝御筆)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이 전부이다. 따라서 우선은 『조선왕조어필』(朝鮮王朝御筆)의 내용에 의거하여 이 편지를 소개해 두기로 한다.

 

 

이 편지의 사진본을 보면 왼쪽 위 여백에 "숙모주전(叔母主前)"이라 쓰여진 종이를 오려 붙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봉투에 쓴 수신자 부분을 첩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려 붙인 것이다. 간찰첩을 만드는 경우 이와 같이 봉투에 있는 수신자 부분을 잘라 붙여서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왼쪽 끝 편지의 내용이 끝나는 부분 아래에는 "원손(元孫)"이라는 발신자 부분을 오려 붙였다. 이 또한 봉투 뒷면에 쓴 발신자 표시를 첩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오려 붙인 것이다.

 

 

발신자가 "원손(元孫)"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는 정조가 원손이던 시절에 보낸 것이다. 정조는 정조의 나이 8세 때인 1759년(영조 35년)에 세손(世孫)에 책봉되었으므로 이 편지는 8세 이전에 쓴 것이나 더 이상 정확한 연대를 알기는 어렵다.

 

 

정조가 세손으로 책봉된 뒤 3년 후인 1762년(영조 38년)에 장헌세자(莊獻世子, 정조의 생부, 일명 사도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영조의 맏아들인 효장세자(孝章世子)의 후사(後嗣)가 되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따라서 정조가 세손 시절에 쓴 편지라면 수신자인 "숙모(叔母)"가 생모인 혜경궁 홍씨가 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이 원손 시절에 쓴 편지이고 『어필』(御筆)에 실린 다른 언간들과 마찬가지로 홍씨 집안에 보낸 것이므로 수신자인 "숙모(叔母)"는 외숙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의 말미에 "한아바님겨오셔도 평안오시다 온니"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한아바님"은 이 편지가 홍씨 집안에 가는 것이고 숙모가 외숙모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정조의 외할아버지인 홍봉한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편지는 "어제 봉셔 보고(어제 숙모님께서 보내신 편지를 보고)"라는 부분으로 보건대 외숙모가 보낸 편지에 대한 정조의 답장 글이다. 선선해지는 가을에 숙모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뵌 지가 오래되어 그립기도 하던 차에 숙모가 보낸 안부 편지를 보니 반갑고 기쁘다는 내용이다. 특히 정조는 이 편지에서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다라고 적고 있어 어린 원손이 할아버지의 안부를 걱정하는 기특한 마음을 살필 수 있다. 어린 원손에게서 이런 편지를 받았을 때 숙모나 할아비로서의 마음이 얼마나 흡족했을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어린 원손이 웃어른인 숙모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보니 상대방을 존대하는 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숙모의 안부와 관련된 "긔후"나 수신자는 아니지만 제 3의 인물로 존대해야 할 인물인 "한아바님"을 행을 달리한 후[이행(移行)] 한 칸 올려 쓴 것[대두(擡頭)]과 같은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와 같은 격식을 배워 익힌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다른 편지들과 비교할 때 한 칸을 띄우거나[격자(隔字)] 대두(擡頭)하거나 할 법한 경우인데 그대로 이어쓴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문안(問安)"과 "봉셔(封書)"가 그러하다. "문안(問安)"은 '웃어른께 안부를 여쭙는다'는 의미로 이때의 '안(安)'은 바로 존대해야 할 수신자의 안부를 의미한다. 그래서 보통 편지글에서는 '문안'에서 '안' 앞에 간격을 두거나 '안'을 다음 행의 첫 머리로 행을 달리하여 한 칸 올려 쓰는 등으로 존대하고 있음을 표시한다. "봉셔"의 경우도 상대방의 편지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봉' 앞에 간격을 두어 존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정조가 원손이던 시절에 쓴 이 편지에서는 '문안'과 '봉셔' 모두 그대로 이어 쓰고 있다. 이는 존대를 하지 않았다기보다 워낙 어린 나이여서 그 격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御筆』(한국서예사특별전 22), 2002, 우일출판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http://www.hangeulmuseum.org/

 http://www.hangeulmuseum.org/sub/special_flash/2007/special_ex(2007).html

'삶속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 인사  (0) 2007.12.16
세계가 선정한 10대 음식  (0) 2007.12.08
120 다산 콜 센터  (0) 2007.09.13
홈페이지 자랑 하기  (0) 2007.09.11
영목 다전을 다녀와서 ...  (0) 2007.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