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예술

[스크랩] 아를르의 반고호II

소담이2 2007. 11. 24. 06:02
 
 
 빈센트 반고호가 태양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 왔다고들 말한다.
 
잘만 했으면 우리가 대표적 후기인상파로 기억하는 화가 세명이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볼수도 있었을것이다.
폴 세잔,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호를 후기인상주의자로 분류하는데 여기서 후기라는 것이 영어의 POST를 번역한 단어이다.
그렇니까 포스트 모더니즘의 그 포스트이다. 이 포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탈 인상주의가 되기도 하고 인상주의 이후가 되기도 한다.
예컨데 인상주의라는 커다란 산봉우리에서 다음 산등성이로 넘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화가들이 이 양반 들이다.
반 고호는 루소와 밀레가 바르비종이라는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파리화단에 계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자연 안에서 보다 인간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모습에서 그런 집단을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1888년 2월 아를르에 도착해서 파리에서 만났던 많은 화가들을 꾀어보면서 그의 화풍 말기를 시작한다.
누에넨에서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드디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테오의 도움으로 먼저 폴 고갱이 도착한다.
 
흔히들 반고호가 남불의 작열하는 태양에 영향을 받아 그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캔버스위에 물감을 짜대는 양식으로의 표현주의를 구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고호의 그림에서 따온 실루엣으로 고호의 아를르 시대를 상징하는 노란색...
 이 표시를 쫒아가면 반고호 순례를 하게 된다.
 
 
 
먼저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강변으로 가 보자. 라 뉘 에뚜왈레... 이 단어가 왜 별이 총총뜬 밤으로 번역되었는지... 차라리 그냥 별밤이면 어떨까...  론강의 별밤이다. 아를르에 도착한 해 가을에 그려졌고, 이 그림을 그릴당시 그가 느낀 남불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별이 터지는 소릴 들었다고 할정도로 그는 매혹 당했다. 
 
 
 자 그자리에서 마을을 등지고 맞은편 슈퍼마켓쪽을 바라보면 로터리 한귀퉁이에 이 노란집을 표시한 표석이 보인다.
우편배달부 룰랭이 구해준 그 유명한 노란집이다. 2차대전중 소실된 이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 아를르시 당국의 꿈이라 생각된다.

 
그 시기 그의 친구는 우체부 룰랑씨와 초록색 압상트 뿐이었다는데...  이곳에서 고갱이 음식을 했었다고 한다.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개념없는 순진무구한 사람에게 살림을 맞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의 폴 고갱은 전직 주식 중개인이었으니 고호에게 느꼈을 답답함은 무지했을거다. 

 
주인의 부재를 통해 죽음을 암시한다는 가구들... 하이간 미술사가들의 갖다 붙이기란... 저 가난한 가구들의 지금 가격이 얼마일까?
그러고 보니 주인의 부재라고 말할때 부재역시 불어로 압상이네....
 
시내로 들어가 보면 원형경기장 옆에서 고갱이 그린 그림도 만날 수 있다.
 

그 유명한 밤의 카페이다. 아직도 성업중이다. 이 곳의 그림역시 맨위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도착한해 가을에 그린 그림이다. 그 가을의 밤하늘이 화가를 가만히 두지 않았나보다.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그가 그렇게도 꿈구어 왔던 화가 공동체로의 첫 참가자 고갱이 내려올것이니 얼마나 설래였을까?
참고로 아를시내의 카페들 벽에는 반 고호그림 일색이다.
 
 
 
그가 있었던 정신병원이다. 고갱이 떠난후 그에게 다가온 발작...1988년 12월23일 밤, 정 붙이고(?) 살던 라셜에게 그는 그의 귀를 신문지에 말아 맡기게 된다.잘 보관해 달라는 말과 함께...  이 여자가 얼마나 놀랬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고 결국 그 일로 반고호는 그해 크리스 마스 이브를 경찰조사로 보내게 된다.
이 미친놈을 그냥둘수 없다는 아를르 시민들의 탄원으로 강제 입원하게 된곳이 이곳이다.
그리고 다음해 봄 그는 생레미 드 프로방스의 클리닉으로 옮기게 된다.





고호가 자주 그렸던  지역이다.  이곳은 옛날 로마 가도 지역인데 이곳을 방문하기 전까진 그의 그림 좌우에 있는 돌들이 벤치인줄 알았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로마인들은 시내를 벗어난 가도양편을 무덤가로 사용하여 죽은자들과 길가는 나그네모두를 위한 쉼터를 조성하였고 길옆의 시계를  보장하여 노상강도의 출현도 억제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반 고호의 도개교이다. 아를 시 당국이 복원하여논 이다리의 이름은 반고호 다리이다 시 외곽에있으나 찾기가 어렵지는 않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그의 그림에서 몇명의 화가를 떠올린다.
그와 자화상 부분에선 유일하게 쌍벽을 이룰화가인 렘브란트와 담백한 소묘가 일품인 대브뤼겔, 화려함에선 따를자가 없는 루벤스 그러니까 이 네덜란드 태생 신교화가는 북유럽의 르네상스의 피를 이어받아나갔다는 얘기다.
여기에 사람들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가 그의 귀를 자른 이야기만 하더라도 고갱과 싸운이후에 홧김에, 여자에게 무시당해서, 평소 자화상을 그리는데 그쪽 귀가 거슬려서라는둥 그가 마신 압상트와 포도주가 모두 싸구려여서 그가 미치기도 하고, 너무 많은 양의 유화기름을  단시간에 들이마신 영향 때문에 미치기도 하고, 인생자체가 자신이 너무도 정열적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이단으로 몰리어 쫒겨난 사람에게 더 이상의 가혹함은 없었을지도 독실한 기독교신자 화가에게 넌 이단이고 게다가 니 그림은 그림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나라도 정신병원에 들거어가고 싶었을거야...
 이어지는 호가를 찾아서는 생레미로 얘기를 옮겨볼까 한다.
출처 : 남 프랑스
글쓴이 : 깎은 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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