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명詩

파꽃길

소담이2 2006. 4. 17. 14:43

 

 

파꽃길

               문정희

 

흰 파꽃이 피는 여름이 되면
바닷가 명교리에 가보리라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냄새를 따라가면
이 세상 끝에 닿는다는 명교리에 가서
내 이름 부르는 바다를 만나리라
어린시절 오줌을 싸서
소금 받으러 가다 넘어진 바위
내 수치와 슬픔 위에
은빛 소금을 뿌리던 외가 식구들
이제는 모두 돌아가고 없지만
서걱이는 모래톱 속에 손을 넣으면
차거운 눈물샘은 여전히 솟으리니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냄새를 따라가서
그리운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리라

넘실대는 여름바다에
푸른 추억의 날개를 달아주리라

 

 

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횐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 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뽀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 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순간
            문정희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 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