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근거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근거 발견
‘독도의 날’ 기념 특집1…독도 바로 알기
1900년 10월 25일은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제정된 날이다. 이 칙령은 울릉도와 독도를 대한제국이 행정관할하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처럼 뜻 깊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을 기념하기 위해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정할 것을 한 시민단체가 주장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독도의 날'. 독도의 날을 맞아 우리 땅 독도에 대해 알아보고 독도를 어떻게 지킬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
독섬, 돌섬, 석도, 독도!
[서울톡톡] 10월 25일이 왜 '독도의 날'일까?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2000년에 한 시민단체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제정을 기념하기 위해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제정할 것을 주장하면서 '독도의 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 날은 휴일이 아니어서 무슨 날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국제국 칙령 41호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이 날을 기념하려고 하는 것일까?
조선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1900년 대한제국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고종은 울릉도 개척에 관심이 많았다. 대한제국 정부는 울릉도에 사는 주민에게 1883년부터는 세금도 면제해주고 배 만드는 일을 허락 하는 등 우대정책을 실시하여 육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도록 장려했다. 뿐만 아니라 김옥균을 '동남제도 개척사'로 임명하여 울릉도와 주변의 여러 섬을 개척하는 일을 맡겼다. 이는 조선정부가 울릉도를 비롯한 주변도서를 적극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준다.
울릉도 개척민이 점차 늘어나는 것과 함께 울릉도에 무단으로 들어오는 일본인들도 늘어났다. 일본인들은 불법적으로 나무를 베어가고, 강치와 전복을 잡아 갔다. 조선 정부는 울릉도에 도감을 두어 관리했으나 일본인들의 불법 활동을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1895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더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 불법 벌목과 조업을 자행했다. 이에 도감 배계주는 일본인들의 불법적 행위를 조사하여 내부에 여러 차례 보고하였다. 이를 보고받은 고종은 1900년 6월 우용정이라는 시찰관을 파견하여 상세하게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우용정은 울릉도 주민에게 1) 배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지 말 것, 2) 선박을 구매하여 해운과 무역에 활용할 것, 3) 울릉도에서 생산되는 물건은 모두 울릉도의 배로만 실어나르게 할 것 등 몇 가지 금기사항을 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제국 정부는 울릉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철수를 일본 정부에 요구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일본인들의 '거주'와 '벌목'을 둘러싼 심각한 대립이 생겼다. 일본 정부는 울릉도에 일본인이 거주하는 것을 합법화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주한 일본 공사는 '울릉도에 일본인이 거주하는 것은 조약 규정에 어긋난다'고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하였다.
촛대바위가 있고 참나리와 강치가 사는 독도…최근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근거 발견
이러한 배경에서 대한제국 정부는 울릉도와 그 부속섬을 확실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를 반포한 것이다. 그 내용은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했다. 또 울도군수가 관할하는 지역을 '울릉전도, 죽도, 석도'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죽도'는 울릉도 가까이에 있는 댓섬을 가리키고 '석도'는 독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석도'는 독도인가?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독도를 '독섬'이라고 불렀는데 '독'은 '돌'의 방언이다. 즉 독섬은 돌섬을 말한다. 돌섬은 의미를 따라 한자로 표기하면 '석도' 가 되고, 소리를 따라 표기하면 '독도(獨島)'가 된다.
일본은 '임자 없는 땅'이었기 때문에 1905년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러한 경위를 무시한 억지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독도를 우리 영토로 관리해왔다. 또 근대 국제법에 비추어 볼 때도 일본보다 5년이나 앞서 칙령을 반포해 독도가 울릉도의 행정구역임을 명백하게 했다.
또한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도 최근에 발견되었다. 대한제국 칙령 반포 후인 1902년에 일본인들이 독도에서 잡은 전복에 대한 세금을 울도군수에게 납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런 세금 기록은 1905년 이전에 일본이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칙령 제41호는 울릉도와 독도를 대한제국이 행정관할하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함으로써 일본인들의 불법 어획이나 불법 침입 또한 막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1900년 이미 울릉도와 그 부속섬 독도에 대하여 우리는 영토 주권행사를 분명히 하였다. 이것이 바로 1900년 10월 25일 선포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조윤수(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제공/ 동북아역사재단